[홍권희의 월가리포트]빈라덴에 '그린스펀'효과 사라져

  • 입력 2003년 2월 12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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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9·11 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 직전, 전쟁 긴장감이 고조돼가던 파키스탄에선 반미 및 아프간 지원 시위가 수시로 벌어졌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인 이들 시위대의 영웅이었다.

시위대는 “오∼사마, 오∼사마”를 연호했고 주변 상인들은 빈 라덴의 초상화가 들어있는 손수건이나 두건을 팔았다. 그 빈 라덴이 뉴욕주가를 아직껏 뒤흔들고 있다.

이라크인들에게 미국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하는 빈 라덴의 육성으로 보이는 테이프가 11일 공개되면서 뉴욕증시 주가가 하루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오전장에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경제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을 계기로 주가가 올랐다. 그는 미 상원의 은행위원회에서 증언하면서 이라크와의 전쟁 가능성이 기업 지출을 막고 있으며 향후 경제전망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오후 늦게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빈 라덴의 테이프는 주가를 끌어내리고 말았다.

특히 기술주는 10일 큰 폭 상승했으나 11일엔 빈 라덴 테이프에 발목이 잡혀 약보합세에 머물렀다. 기술주와 관련해 재미있는 점은 월가의 주식 애널리스트들은 기술주에 대한 분석을 많이 내놓고 있는데 이것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애널리스트의 약 4분의 1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반도체, 네트워크장비, 기타 관련제품 등을 추적하고 있다. 이들 산업의 시가총액(S&P500 기준)은 15% 수준이니까 애널리스트들이 과잉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조사회사인 스타마인의 지적이다. 이 회사가 분석한 미국의 주식 애널리스트 7569명 가운데 23%는 정보기술(IT) 산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IT산업의 증시 비중은 14% 정도다.

이에 비해 식음료, 담배, 소비재산업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 인기가 없다. 시가총액은 9.5%에 이르지만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3%에 불과하다고 스타마인사는 분석하고 있다. 이런 양상에 대해 월가 사람들은 “투자은행에 돈벌이가 되는 산업분야에만 애널리스트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시장을 움직이는 ‘뜨거운’ 산업분야를 다루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겠지만 월가의 이야기는 지난해 월가 스캔들 이후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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