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正과세로 가는길]전문직종의 탈세유형

  • 입력 1999년 6월 27일 19시 01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개업중인 A변호사는 97년 143건의 소송을 수임, 8억3440만원을 벌었다. 이중 A변호사가 신고한 순 소득액은 매출액의 43.4%에 해당하는 3억6195만원.

변호사 직종의 표준소득률은 매출액의 52.8%. 표준소득률이란 국세청이 과세의 근거로 삼기 위해 규정해놓은 매출액 대비 순소득률이다.

전문직종의 자영자들은 표준소득률의 80% 이상만 신고하면 성실신고자로인정되는게관행. 이에 따라 표준소득률의 82%를 신고한 A변호사도 성실신고자로간주돼아무런세무조사나 제재를 받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A변호사는 전체 수입중 경비가 총 4억7245만원이라고 신고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이는 허구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의 경비내용 중 사무장과 여직원 등 사무실 직원 3명의 급여가 9450만원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이 받은 액수보다는 상당히 부풀려진 것. 또 △도서구입비 4300만원 △사무용품비 1억원 △기타 수수료 4700만원 △잡비 3400만원 등 대부분의 경비항목도 부풀려 신고됐다.

97년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연예인의 88%, 한의사의 82%, 의사의 56%, 변호사의 34%가 연간 매출액이 1억5000만원 이하라고 신고했다. 이들 중 10.9%는 올 4월 국민연금 확대실시에 따른 소득신고때 직장인 평균소득(월 144만원)보다 소득이 적다고 신고했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가장 흔한 탈세방법은 A변호사의 경우처럼 이른바 ‘가공(架空)경비’를 만들어 계상하는 것이다. 97년 2억4000만원을 벌어들인 B성형외과(강원 K시 소재)는 연간 경비가 1억4000만원이라고 신고, 소득액 1억원 중 2700만원을 세금으로 냈다.

그러나 B병원이 신고한 1억4000만원의 경비 중 4000만원의 의약품비와 2000만원의 접대비는 ‘가공경비’. 6000만원의 가공경비를 만들어 ‘절약’한 세액은 2400만원에 달한다.

더구나 거래액 자체를 누락시킬 경우 탈세규모는 엄청나게 커진다.

A변호사의 경우 97년에 맡았던 민사사건 34건과 형사사건 58건 중 성공보수금이 기재돼 있는 것은 1건에 불과했다. 변호사의 경우 맡는 사건의 30% 정도에서 착수금 이외에 성공보수금도 받는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상당수의 성공보수금이 누락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세금계산서 작성의무가 없는 의사와 한의사의 매출액 축소는 더욱 심하며 특히 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된 의료행위의 경우 집중적인 매출액 줄이기의 대상이 된다.

경기 광명시에 있는 C치과의 경우 실제로 25만∼30만원씩 받는 금보철의 세무서 신고단가는 개당 2만원에 불과하다. 실제 매출액과 신고 매출액 사이에 무려 10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매출액이 쉽게 노출되는 회계사와 세무사 등은 매출액 축소를 통한 탈세가 쉽지 않다. 이들의 주 고객인 법인사업자가 세금공제를 받기 위해 이들에게 지불한 수수료를 비용으로 신고, 매출액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경우 한 사람의 매출액을 여러 사람에게 분산시키는 수법이 주로 사용된다.

개업 10년째인 회계사 D씨의 97년 매출액은 4억원. 그러나 D씨가 매출액으로 신고한 액수는 2억원에 불과했다. 2억원의 매출액을 갓 개업한 신참 회계사와 활동을 중단한 회계사 매출액으로 신고했다. 매출액을 분산, 낮게 신고할 경우 세율이 낮아진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법률상 허점도 있다. 지난해 개정된 부가가치세법은 전문직의 탈세를 막고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이들을 부가세 면세사업자에서 과세사업자로 전환했다.

그러나 같은 법 시행령 제79조는 ‘개인과 거래할 경우 세금계산서 대신 간이영수증을 발행한다’고 규정, 개인고객을 주로 상대하는 변호사의 경우 거래액 자체를 누락시킬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물론 표준소득률에 의한 소득추계방식도 탈세를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들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직 자영자들은 IMF이후 매출액이 크게 줄었지만 신고액은 이전과 비슷하거나 되레 올려잡았다. 갑자기 매출액을 줄여 신고할 경우 세무조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한 전문직 종사자는 “탈세 자체는 잘못된 것이지만 정상 신고를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 사회적 요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동아일보―참여연대 공동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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