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盧정부 반면교사 10년]<5>권력에 물든 시민단체

  • 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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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논란 휘말린 낙선운동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간 시민단체들은 과도한 정치 지향성으로 인해 시민들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2004년 5월 서울 종로구 대신고 입구에서 낙선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를 저지하는 중앙선관위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불법 논란 휘말린 낙선운동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간 시민단체들은 과도한 정치 지향성으로 인해 시민들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2004년 5월 서울 종로구 대신고 입구에서 낙선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를 저지하는 중앙선관위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대선에까지 입김… ‘시민의 단체’서 ‘정권의 단체’로

김대중 정부 출범을 눈앞에 둔 1998년 1월 4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시민단체연합 신년 하례식에 참석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시민단체 신년하례식에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김대중 정부에서 달라질 시민단체의 위상을 짐작하게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3년 1월 6일. 정권을 넘겨받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역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하례식에 참석했다.

당시 노 당선인은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시민운동의 축적이 없었으면 당선될 수 없었다”며 대통령 당선을 시민사회의 공으로 돌렸다.

○시민단체의 제도권 진출

김 전 대통령은 8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참여 민주주의’를 제시하면서 시민단체와의 유대를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 출신들이 청와대 경제수석과 농림부 장관 등에 임명되고 각종 대통령 자문위원회에도 자리를 차지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어 2000년에는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을 만들어 시민단체 100여 곳에 연간 75억 원의 사업비를 배정했다.

정부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제도권에 들어선 시민단체는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2000년 참여연대 등 전국 412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정치권 물갈이를 내세우며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했다. 시민연대는 곧이어 15대 총선 공천 반대 인사와 낙선 후보 명단을 발표했다. 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바꿔 열풍’을 일으키며 낙선 대상자로 지목된 86명 중 59명을 탈락시켰다.

막강한 힘을 과시한 시민단체들은 2년 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다시 한 번 위력을 발휘했다.

2002년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자 25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연일 촛불집회를 벌였고 수십만의 시민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당시 촛불집회가 대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이견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이 때문에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정부 NGO지원사업’을 평가했던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는 2000년 보고서에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을 한국 시민운동의 중요한 분수령으로 평가했다.

시민단체가 김대중 정부와 상호협력 관계를 형성하면서 ‘제5의 권부’로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서유경 교수는 “국민의 정부 출범은 1987년 6·29선언을 이끌었던 시민사회 주체 세력들이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의의를 갖는다”며 “정치적 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시민단체 출신들이 정권 내부에 참여자로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의 거대 권력화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협력적 관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민단체를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흡수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전문위원 이상 고위급 인사 55명 중 10명을 시민단체와 노동권 출신으로 채웠다.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정국이 시민단체의 ‘촛불시위’로 봉합된 직후인 2004년 5월에는 청와대 비서실에 ‘시민사회수석실’이 신설됐다.

청와대 비서실 내에 사회갈등 조정 전담반이 마련되자 시민단체들은 즉각 “청와대가 시민사회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며 크게 환영했다.

행정부에서 시작된 이 같은 현상은 정치권으로도 파급됐다. “신당 창당 과정에 시민사회가 절반으로 참여했지만 그동안 시민사회 역할이 보이지 않았다. 신당의 반쪽에 새로운 사람과 비전, 정책이 있다는 것을 이번 총선을 통해 보여 줘야 한다”는 오충일 대통합민주신당의 3일 발언이 이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이 같은 시민단체의 권력화는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참여연대 보고서’에 잘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시민단체의 대표 격인 참여연대는 지난 10년간 정부 두뇌의 산실 역할을 했다.

전현직 임원 416명 가운데 36.1%인 150명이 청와대와 정부기관 등에 진출했다. 이들이 차지한 자리는 모두 313석이나 됐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22석(7%)에 불과했던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이 김대중 정부 113석(36.1%)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는 158석(50.5%)까지 팽창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박병옥 사무총장은 “참여정부 들어 시민단체 인사 영입이 두드러졌다”며 “시민단체 인사들이 현 정권의 인사 풀로 활용되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거대 권력화한 시민단체는 그에 따른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총선시민연대는 2000년에 이어 2004년 총선에서도 정치권 물갈이를 시도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지지한 후보들은 초라한 성적으로 고배를 마셨다. 대법원도 특정 후보자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또 2004∼2005년 국가보안법, 언론개혁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제정·개정을 둘러싼 논쟁은 이념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보수를 표방하는 시민단체가 등장하는 데 불을 지폈다.

명지대 행정학과 임승빈 교수는 “시민단체의 힘을 받고 등장한 참여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를 만들면서 보수 진영을 집결시켰다”고 분석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12개 기관중 신뢰도 가장 큰폭 하락▼

시민단체들은 최근 몇 년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국민에게서 신뢰를 잃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지난해 국민 16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 시민단체는 ‘신뢰하는 사회기관’ 6위로 전년도 조사 때에 비해 1계단 내려갔다.

16개 기관을 대상으로 2003년부터 실시된 이 조사에서 시민단체는 2004년까지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지난해 국민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IMF 1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변했나’ 조사에서도 시민단체는 정당, 대학, 군대, 노조, 경찰, 대기업 등 12개 기관 중 최근 10년 새 신뢰도가 가장 크게 하락(48.8%→21.6%)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신뢰도 추락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시민단체의 과잉 정치 개입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성공회대 NGO대학원 박상필 교수는 “2000년과 2004년 총선 때 시민사회가 주도한 낙선·낙천운동이 대표적”이라며 “시민단체가 선거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정치에 적극 개입한 데 대해 불법과 편파성 시비가 일면서 시선이 차가워졌다”고 말했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김선미 교수는 “시민단체가 권력화하고 시민단체 의제가 정책으로 연결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 세력이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권력의 일환으로 시민사회단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시민단체가 조직의 내실을 기하고 시대적 변화를 읽어 내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자는 “제도적으로 성장한 시민단체가 이제는 내부의 고질적 병폐를 털어 내야 한다”며 “연고주의 등 불합리한 요소와 소통이 없는 비민주적 요소 등을 얼마나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연명 교수는 “시민단체가 10년간 정책적으로 제시했던 대안들이 대부분 수용됐다”며 “변화된 상황에 맞는 새로운 의제를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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