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신장섭]국적보다 인재 중시하는 싱가포르

입력 2005-05-17 18:07수정 2009-10-0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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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회피 목적의 국적 포기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새 국적법 시행 이전에 서둘러 아들의 국적을 포기하는 비뚤어진 자식사랑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적 포기 신청자로 북적대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국적업무출장소. 동아일보 자료 사진
병역을 회피하고자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국적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법이 시행되기 전에 자식의 국적을 포기시키는 부모가 크게 늘었다. 부모들 나름대로 택한 ‘자식 사랑’의 결과다.

그냥 자식들이 병역의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면 그만이다. 범죄가 아닌 만큼 ‘사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고 치부하며 지나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부 식자층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황당한 정책 비판을 내놓는다. “세계적으로 국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인데 한국 정부가 이를 거스르고 있다”는 것. 해외 사례를 제멋대로 인용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적에 대한 규제가 세계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각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지 별로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 국민으로서 의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국적에 대한 규제가 가장 개방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를 살펴보자. 싱가포르 정부가 ‘해외 인재’라고 인정하는 고위 경영자, 고급 엔지니어, 첨단 과학자들은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영주권을 얻을 정도로 혜택을 받는다. 반면 단순 근로자들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영주권 신청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병역의무도 엄격하다. 한국에서는 대학생이 되면 징집을 연기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고교를 졸업하면 건강한 남자는 무조건 군대에 가야 한다. 다양한 이민으로 구성된 사회이기 때문에 국가관을 형성하는 데 병역의무가 중요한 요건이 된다.

국가의 혜택을 받았는데 상응하는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혹독하게 처리한다.

국비 장학생의 경우를 보자. 싱가포르 정부는 예전부터 장학생들을 외국에 많이 보내 왔다. 그렇지만 이들이 공부한 뒤 국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가문의 불명예로 만든다. 장학금 전액을 반납해도 계약 위반 학생들의 명단을 신문 지상에 공개해 버리는 것이다. 이들이 나중에 돌아와서 정부관련 기관 등에서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싱가포르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을 나가거나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이 꽤 많다. 하지만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체제를 갖췄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고촉통(吳作棟) 전임 총리도 이민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기보다는 인재들을 국내에 끌어들이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적 이탈 행렬에 대해 신경쓰기보다는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잘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한국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이 들어오도록 하면 된다.

또 뿌리의식을 가진 국민이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며 재생산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싱가포르식 엘리트주의를 답습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지도층 선별 메커니즘을 만들고 유지해 나가야 한다.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탓하며 징벌을 강화하고만 있으면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이들이 미래에 돌이켜볼 때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국내 체제를 정비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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