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Digital]동성애자 인권 보호 '死角지대'

  • 입력 2000년 10월 12일 18시 40분


▼국내 관련법 실태▼

탤런트 홍석천씨(30)의 ‘커밍아웃’으로 불거진 동성애 논란은 사회현상을 최종적으로 규율해야 할 우리의 법에도 새 과제를 던졌다.

동성애에 관한 한 우리의 법은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 그러나 법무부가 올 정기국회에서 입법을 추진중인 인권법에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인권침해의 한 유형으로 보는 조항이 삽입돼 동성애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동성애자들과 그들의 단체가 일찍부터 법의 이름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노력해온 결과라고 법조계는 평가한다. 그리고 헌법과 소수자의 인권을 무기로 한 동성애자들의 다양한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황〓‘동성애자 인권운동연합’과 남성 동성애자들의 단체인 ‘친구사이’, 여성 동성애자들의 ‘끼리끼리’ 등은 최근 사이버 공간을 통해 입법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정보통신부가 입법을 추진중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반대하는 자료와 수십건의 글이 띄워져 있다.

익명의 동성애자는 “이 법에 따라 인터넷 내용 등급제가 시행되고 청소년 유해정보에 대한 검열 등이 강화되면 대다수 동성애자 사이트와 관련 내용이 ‘청소년 유해정보’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며 “소수 약자인 우리들이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국가가 통제하도록 놓아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김모씨 등 30여명은 지난해 7월부터 교육부를 상대로 “중고교 교과서의 동성애 왜곡 내용을 수정하라”는 법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

교과서 내용이 ‘동성애가 에이즈(AIDS)를 유발한다’는 등 학생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주거나 편견과 혐오증을 조장하는 한편 동성애자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99년 3월 발행된 고교 윤리 교과서는 “에이즈, 동성연애, 매춘 등이 늘어나면서 성도덕의 문란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적고 있다. 교련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동성간의 사랑이나 성행위는 에이즈 등 각종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가르치고 있다.

소송대리를 맡은 이석태(李錫兌)변호사는 “이같은 내용은 모두 윤리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며 “교육부로부터 다음 번 개편시기에 문제된 내용의 삭제, 수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으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성전환 수술을 받은 동성애자들의 호적정정신청도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전망〓이변호사는 “외국처럼 동성애자들이 합법적으로 결혼을 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는 아직 너무 먼 이야기”라며 “우선 고용현장 등에서의 동성애자 인권침해와 차별을 막는 실정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홍씨처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직장을 잃는다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동성애에 대한 법적 보호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다. 검찰 출신의 한 원로변호사는 “법은 사회현상을 최종적으로 반영하는데 비해 아직 우리 사회는 동성애를 받아들일 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다른 나라의 관련법규▼

동성애자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헌법, 민법상의 권리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을까.

미국에서는 대다수의 주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취업과 직장내 인사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없게 되어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올해 7월 버몬트주는 처음으로 동성 커플을 부부로 인정했다.

버몬트주의 동성애 부부 3쌍이 98년 주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주(州) 대법원이 “이성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주도록 법을 개정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 이에 따라 동성부부들은 의료보험이나 세금감면 등 각종 사회보장에 있어 이성부부와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됐고 배우자가 사망했을 경우 상속권도 갖는다.

캐나다에서는 77년 게이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대법원은 지난해 5월 배우자 개념에 ‘동성 파트너’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온타리오주 법원의 1심과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등에서는 이미 동성간의 결혼이 합법화돼 있으며 덴마크의 경우도 86년부터 동성 커플들의 재산상속까지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0월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기로 한 ‘사회연대협약’(PACS)을 통과시켰다. 이에 분개한 보수주의자들이 헌법소원을 냈지만 최고법원은 “위헌 요소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특히 사회당은 동성애자들의 고용 평등까지 실현하기위한 입법 운동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독일 녹색당은 동성애자 부부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영국도 최근 동성 부부가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4월 동성애 부부에게 보통 부부와 똑같은 권리를 부여하도록 15개 회원국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런가 하면 유럽인권재판소는 지난해 9월 “군입대 지원자를 대상으로 성생활을 조사하고 동성애자의 군 입대를 금지한 것은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유럽인권협약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문제도 많다. 프랑스의 PACS법은 통과될 때까지 보수 우파와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고 영국에서도 지방자치단체들과 가톨릭, 성공회 등 종교단체들이 “남녀 성 역할 교육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온다”며 법안 추진에 반발하고 있다.

▼동서양 규제의 역사▼

가톨릭과 기독교 등의 종교에 바탕한 서구 문화는 성경의 해석과 가르침에 따라 동성간 성행위를 죄악시해왔다.

성경에 기록된 동성애 금지는 로마법과 유럽의 교회법 등에 영향을 줘 중세 영국에서 항문성교를 시도한 남성들은 교회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생매장이나 화형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1804년 프랑스에서 제정된 나폴레옹 법전의 영향을 받은 유럽 국가들은 동성애자(게이)들에 대한 기소를 중지하기 시작했다. 동성애를 무조건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부로 통제하기 시작한 것.

영국에서는 항문성교에 대한 형량을 종전의 사형에서 1861년부터 종신형으로 감형했다. 프랑스에서는 1810년부터 성인들이 서로 동의한다는 조건하에 이뤄지는 동성간의 성행위를 처벌하지 않았다. 폴란드의 경우 1932년, 스위스는 1942년, 스페인은 1990년부터 형사처벌조항을 없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국은 67년 동성애자들에 대한 처벌규정을 없앴지만 20세기 초까지도 그들은 고위직 공무원이나 외교관으로 임명되지 못했다.

법도 오락가락했다. 러시아에서는 1934년 동성간의 성행위를 다시 범죄로 규정했고 적발될 경우 3년∼8년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당시 옛 소련에서는 매년 평균 700명 정도의 남성들이 동성간의 성행위 때문에 구속됐다.

영국법의 영향을 받은 미국 역시 동성간의 성행위를 중죄로 취급했다. 이는 독립 후에도 지속돼 모든 주에서 61년까지 동성 이성을 불문하고 오럴섹스와 항문성교를 금지했다. 미국 20여개 주에서는 이에 대해 10년형에서 최고 종신형까지 선고했고 버지니아주에서는 18세기 말까지도 이를 사형에 해당되는 범죄로 취급했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영향을 받은 나라 중에서도 동성간의 성행위에 대한 형벌은 존재했다. 에디오피아는 10일간의 구류, 인도에서는 벌금형과 함께 경찰서 밖에서 공개적인 태형에 처했다. 칠레에서는 동성애자 단체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게이 남성들은 의무적으로 정기 HIV항체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슬람법이 적용되는 8개 국가에서는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적으로 법적인 처벌규정은 없었지만 이조시대 실록에 궁녀들의 동성애를 처벌하기 위해 동성애 금지령을 내리고 태형 70대∼100대의 엄벌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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