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대법원장 지명자 최종영씨/소신갖춘 원칙주의자

  • 입력 1999년 9월 16일 19시 22분


16일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최종영(崔鍾泳)전대법관은 “미력한 사람인데 중대한 시기에 대법원장에 지명되어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말했다.

최지명자는 오전 9시경 청와대 비서실의 전화를 받고서야 지명 사실을 알았으며 그때까지는 ‘나는 아닌가 보군…’이라며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는 통보를 받은 뒤 바로 한강시민공원으로 나가 산책을 하면서 사법부의 수장(首長)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앞으로의 구상을 가다듬기도 했다.

최 지명자는 “아직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최 지명자에 대한 법조계의 평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먼저 부드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깐깐한 원칙론자라는 것이그를 모셔본 일선법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또 법원행정처장으로 법원의 살림을 맡았을 당시 법원행정처의 예산담당자들은 대충 예산을 짜 갔다가 “1원이라도 더 깎으라”는 불호령을 듣기 일쑤였다. 그에게 ‘최주사’라는 별명이 따라 다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 지명자는 필요할 때는 거침없이 소신을 드러내는 소신파이기도 하다. 그가 김영삼(金泳三)정부당시 이홍구(李洪九)국무총리와 로스쿨 도입 문제로 일전을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 당시 이 총리가 미국식의 로스쿨을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과정에서 사법연수원의 교육과정을 문제삼자 그는 곧바로 유감 성명까지 냈고 이총리의 사과를 받아냈다.

그는 98년 여성단체연합회가 선정한 ‘여성권익 발전의 디딤돌’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상고심의 주심을 맡아 원심을 깨면서 성희롱의 범위를 명확히 가름짓고 원고인 우조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

또 의료사고 재판에서 환자의 권리를 폭넓게 구제하고 지하수 개발지역의 주민들에게 ‘생활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등 법률적 약자의 편에 서서 내린 판결도 적지 않다. 빈틈없는 법논리와 합리주의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장인이 고(故) 고재호(高在鎬)대법관으로 그의 사위 2명도 현직법관이다. ‘탁월한 법관이자 법률행정가’라는 평판이 따라 다니는 그가 이끌어 갈 사법부의 면모일신과 제도개혁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최영훈·하태원기자〉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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