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역대최고 환율… ‘종가 낮추기’ 총력전

  • 동아일보

외환위기 직후보다 높은 1420원대
각종 대책에도 20일 1478원 마감
종가, 기업 재무-내년 환율 큰 영향
정부, 국민연금 투입 ‘환헤지’ 전망
수출기업에 달러 신속 매도 압박도

올해 외환시장 폐장일(12월 30일)을 6거래일 남겨둔 가운데 연평균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 같은 고환율 추세를 꺾기 위해 남은 기간 연말 환율 종가를 최대한 방어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며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던 지난해 말 결산 환율(1472.5원)보다 높아질 경우 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연초 이후 이달 19일까지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21.16원으로 집계됐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평균 환율(1394.97원)보다 26.19원 높다. 최근 환율 흐름이 이어진다면 올해 연평균 환율은 1420원대로 굳어질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지난주 정부와 한은은 외환 건전성 규제까지 완화하면서 시중에 달러를 공급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19일 소폭 하락했던 환율은 1478.0원으로 20일 야간거래를 마감(오전 2시 기준)하며 다시 오름세를 보였다.

정부는 이처럼 환율 상승에 베팅하는 시장의 기대를 꺾기 위해 올해 외환시장 폐장을 앞두고 총력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연말 환율 종가는 달러에 민감한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채비율 등 재무 건전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데다 내년 상반기(1∼6월) 환율과 물가의 방향성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30일 1472.5원으로 마감하며 1997년 말(1695.0원)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이 올라 시장의 우려를 키운 바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공동취재) 2025.11.27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공동취재) 2025.11.27 뉴스1
이에 따라 국민연금이 한은과의 외환스와프를 활용해 대규모 환헤지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달 말 국민연금을 포함한 ‘4자 협의체’를 출범시킨 정부는 환율 안정 대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이달 16일 국민연금과 한은은 650억 달러 규모의 외환스와프 계약을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윤경수 한은 국제국장은 19일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가 일부 재개된 게 사실”이라며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유연하게 해서, 그에 따른 스와프 물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외환스와프는 국민연금이 한은에 원화를 맡기고 달러를 빌려 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매수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시장의 수요가 줄어 원-달러 환율 하락 효과를 볼 수 있다.

정부의 잇단 압박으로 수출기업들의 ‘네고’(달러 매도) 물량이 시장에 풀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18일 국내 7대 기업 관계자들을 소집해 긴급 환율 간담회를 열어 신속한 달러 매도를 당부한 바 있다.

“연말 환율 뛰면 내년 경제 타격” 국민연금-기업 달러 풀기 유도


[연평균 역대 최고 환율]
계엄에 1450원대 치솟았던 환율
새 정부 출범하며 1360원대 하락
관세 여파 -기업 수요 등에 급등
달러 약세에도 원화는 더 약세
“단기 처방… 구조적 해결방안 필요”


올해 원-달러 환율이 ‘V(브이)자’ 곡선을 그리며 급등했다. 외환시장 폐장을 6거래일 남겨둔 상황에서 기업, 금융기관 등의 회계기준이 되는 연말 결산환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경제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화 약세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어 외환 당국도 가능한 방안을 총동원하고 있다.

● 계엄 환율 수준으로 ‘V자’ 급등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 1455.5원이었던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3월 1457.92원까지 상승한 뒤 6월 1365.15원으로 하락했다. 비상계엄-탄핵정국을 거치며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급등했던 환율이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불확실성의 여파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매년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면서 관세 불확실성은 줄었지만, 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커진 데다 올 10월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개인의 해외 투자도 수급 불균형을 키웠다. 10월 평균 1400원을 넘긴 환율은 11월 1460.4원, 이달 1∼19일 1472.49원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1453.35원)보다 높다.

특히 하반기(7∼12월) 달러가 상대적 약세인 가운데 환율 상승이 가팔랐다. 엔, 유로 등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올 1월 109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이달 들어선 97∼98 선이다. 원화가 약(弱)달러보다 더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문제는 올해 외환시장이 고작 6거래일 남았다는 점이다. 연말 환율 종가(마감환율)는 기업들의 재무제표, 내년 사업계획 등의 기준이 된다. 특히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의 경우 마감환율 변동만으로도 장부상 손실 폭이 커질 수 있고 은행의 건전성, 안전성을 평가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도 악화될 수 있다. 19일 원-달러 환율 주간 종가(1476.3원)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해 환율이 마무리된다면 1997년(1695.0원) 이후 가장 높은 결산환율이다.

특히 외환 당국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연말 환율이 상승 마감할 경우 수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심리적 요인이 그대로 이어지고 수입물가 상승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수입물가는 고환율의 여파로 19개월 만에 가장 큰 폭(2.6%)으로 상승했다.

● 수급 불균형 해소에 외환 당국 전력

외환 당국은 최근 원화 약세 요인의 가장 큰 배경으로 지목되는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원화 약세→달러에 대한 과잉수요 증가→원화 추가 약세’로 이어지는 악순환 과정에 경제 참여자들의 ‘구조적 환율 상승’에 대한 믿음이 고착화되고, 투기심리가 커지는 것을 끊어내겠다는 취지에서다.

기획재정부는 18일 외화 공급을 촉진하는 ‘외화 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수출기업의 외화 환전을 유도하기 위한 세제 인센티브 등의 추가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기재부가 2차례 수출기업들의 외환시장 안정 동참을 요구한 데 이어, 최근 대통령실이 7대 그룹 관계자를 불러 모아 환율 대책을 논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은은 1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달러 자산을 국내로 들여와 한은에 예치하는 금융회사에 이자를 지급하는 등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 외환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은 한은에서 최대 650억 달러까지 빌릴 수 있는 외환스와프를 활용해 시장의 달러 수요를 줄이고, 해외 투자 자산의 10%까지 적용할 수 있는 전략적 환헤지를 통해 시장에 달러를 내다 팔면서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수출기업들의 연말을 앞두고 보유 달러를 내다 파는 네고 물량이 더해지면 환율이 1400원대 중반까지 하락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고환율을 잡기 위한 모든 대책을 내놓은 상황이라 추가 여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며 “설령 각종 대책으로 단기 환율을 안정시키더라도 앞으로가 문제다. 구조적인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원-달러 환율#고환율#국민연금#외환스와프#환헤지#수출기업#환율 안정#환율 상승#외환 건전성 규제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