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크랩 “비싼 소모품·시설 없이 반도체 개발…진입 장벽 낮췄다”[도전 K-스타트업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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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년 12월 18일 14시 12분


[서울창경 x IT동아] 도전 K-스타트업은 우리나라 정부 부처 10곳이 함께 여는 최대 규모의 창업경진대회입니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 가운데 혁신창업리그의 일반 리그를 운영합니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성장한 유망 스타트업의 면면을 IT동아가 살펴봅니다.

김석범 플랑크랩 대표 / 출처=IT동아
김석범 플랑크랩 대표 / 출처=IT동아

반도체 개발 과정에서 노광(露光, lithography) 공정은 매우 중요하다. 반도체 칩에 필요한 미세한 회로 패턴을 기판 위에 형상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 노광 공정은 ‘포토마스크(photomask)’라는 소모품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포토마스크란 투사하고자 하는 패턴이 박혀 있는 일종의 틀과 같은 것으로, 테스트를 할 때마다 새로운 마스크가 필요했다. 여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상당했다.

플랑크랩(대표 김석범)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포토마스크 없이 반도체 회로 패턴을 기판에 노광할 수 있는 디지털 노광 장비 ‘마스크리스 리소(MASKLESS LITHO)’를 선보이며 반도체 개발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7월 법인을 설립한 이후 미국, 호주, 싱가포르, 러시아 등 4개국에 50대 이상을 공급했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상장하고 있는 플랑크랩의 김석범 대표를 만나 이들의 기술과 사업 전략을 들어봤다.

- 반도체 분야 창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어떤 여정을 거쳐 창업에 이르렀나?

: 저는 서강대학교에서 기계공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연구 분야는 MEMS(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 및 SLA 기반 광경화성 3D 프린팅(Stereolithography)이다.

실은 이번이 첫 창업은 아니다. 2014년 석사과정 중에 ‘일루미네이드’라는 광경화성 3D 프린터 회사를 공동창업했고, 당시 국내 최초 수준의 DLP 기반 치과용 3D 프린터를 양산해 메가젠 등 대형 치과 기업에 공급했다. 이후 기술력을 인정받아 대웅그룹 자회사로 편입되었고 이후 시지바이오로 M&A되며 첫 엑싯(창업자가 지분을 매각하고 회사를 떠나는 것)을 경험했다.

- 스타트업이 M&A까지 이뤘으면 나름 성공한 케이스 아닌가?

: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개인 입장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창업이라는 것만 알았지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했다. 투자를 어떻게 받는지, 경영권 싸움 같은 건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기술만 알았지 마케팅이나 경영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더 큰 꿈을 펼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후 대기업 체계의 경직성을 벗어나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다만 바로 창업하기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모 스타트업에서 기술 이사로 3년간 활동하며 소프트웨어 기술도 경험하고 노하우도 쌓았다. 그렇게 올해 5월까지 경험을 쌓고, 그동안 축적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관련 데이터, 그리고 제 전공인 반도체라는 세 가지 기반을 통해 올해 7월 1일에 플랑크랩을 창업하게 되었다.

- 플랑크랩이라는 회사명이 참 독특하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 플랑크랩이라는 사명은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로부터 유래했다. 막스 플랑크가 양자역학으로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꿨듯, 플랑크랩은 디지털 마스크리스 기술로 반도체 공정의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한다는 뜻이다.

- 플랑크랩은 어떤 회사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플랑크랩은 간단하게 말해서 미세 사이즈의 패턴이나 물체들을 제조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그중에서 지금 집중하는 건 마스크리스 리소그래피(maskless lithography) 기술을 적용한 ‘마스크리스 리소’라는 장비다. 이 제품의 장점은 제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경험했던 보정 기술과 그래픽 기술을 접목시켜서 저렴하면서도 고성능을 구현했다.

마스크리스 리소그래피는 말 그대로 영화관의 프로젝터 기술과 동일한 기술이다. 영화관 프로젝터가 RGB의 색상을 보여주는 기술이라면, 우리는 동일하지만 UV(자외선)를 다룬다는 것이 다르다. 자외선을 원하는 모양대로 이미지로 투사하는 것이다. 영화관은 크게 확대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작게 축소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 DLP 기술 기반이라고 들었다. 이게 프로젝터에서 주로 이용하는 기술 아닌가? DLP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말고도 다른 분야에서 이용되는 경우가 흔한가?

: 맞다. 우리는 글로벌 프로젝터 시장에서 검증된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DLP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TI DMD(디지털 마이크로 디바이스) 칩을 쓰는 것은 동일하다.

사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이 기술을 적용하는 팀들이 해외에 있다. 최근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기존에 연구용 솔루션에서 DLP 기술을 활용한 적은 있지만, 지나치게 고가의 외산 장비 위주라 한계가 있었다.

- 반도체 산업에서 왜 이런 정밀한 투사 기술이 필요한가?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 요소도 궁금하다

: 기존에 이용하던 노광 장비는 반도체 설계 및 생산에 필요한 정밀한 회로 패턴을 형상화하는 데 이용했다. 근데 이게 상당히 비싸고 비효율적이었다. 고정된 패턴만 노광할 수 있었고, 마스크라는 소모품이 항상 필요했다.

마스크라는 것은 투사할 패턴이 박혀 있는 틀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패터닝하고자 하는 모양을 글래스 기판 위에 만들어 놓고 빛을 쏘면 패턴 있는 부분은 빛이 안 나가고 패턴 없는 부분은 투과되는 방식이다. 이것을 바꿀 때마다 돈이 든다. 실험 모양이 바뀔 때마다 마스크를 새로 만들어야 해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상당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은 이미지 자체로 노광할 수 있다. 이미지 모양 그대로 노광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그려서 바로 노광할 수 있다. 그림판이나 PPT 같은 범용적인 소프트웨어로도 손쉽게 회로 패턴을 만들어 기판에 노광할 수 있다.

- 어떻게 보면 영화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비슷한 것 같다. 영화 산업도 예전에는 아날로그 필름이 필요했지 않나?

: 정확한 비유다. 예전 영화관에서 이용하던 아날로그 프로젝터는 새로운 영화를 상영하거나 제작하고자 할 때 막대한 양의 필름이 필요했다. 이동도 어렵고 보관은 물론 관리 및 사용 등 모든 면에서 불편했다. 비용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영화관에서는 디지털 프로젝터를 이용한다. 디지털 데이터 기반이므로 콘텐츠의 제작 및 복제, 관리, 상영 등 모든 면에서 효율적이다. 우리 마스크리스 리소도 이와 같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 상영관이 디지털 전환을 한 것처럼 반도체 업계 역시 이를 통해 완전한 디지털 전환이 가능하다.

플랑크랩의 ‘마스크리스 리소’를 기존 현미경에 결합한 모습 / 출처=IT동아
플랑크랩의 ‘마스크리스 리소’를 기존 현미경에 결합한 모습 / 출처=IT동아

- 이 기술을 통해서 상당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들었다. 특히 기존 현미경과 결합해서 활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 연구소마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현미경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장비의 업사이클링(재활용)을 통해 한층 부가가치 높은 인프라로 재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주 큰 장점이다.

기존의 환경에서 반도체를 하기 위해서는 클린룸이라는 시설이 필요했는데, 우리 제품은 현미경만 있으면 되므로 간단히 작은 공간에서 반도체를 만들고 테스트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기존 환경 대비 어느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나?

: 클린룸이 필요했던 기존 환경 대비 대략 10분의 1수준의 구축 비용이 든다. 클린룸은 만드는 비용도 많이 들고 관리도 번거롭다. 상당수의 연구소나 학교에서는 물리적인 공간도 없다. 우리 제품의 이용 영역은 소위 최첨단 반도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고가의 시설 자체가 필요 없다. 간단한 액세서리 추가만으로도 먼지없는 개발 환경을 꾸릴 수 있다.

- 기존의 노광 장비 대비 정밀도는 어떠한가?

: 기존의 마스크 얼라이너라는 제품이 있는데, 그 장비 대비해서 동등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구현이 가능하다. 최고 600나노미터 수준까지 가능하고, 평균 1마이크로미터 수준의 패턴은 아주 손쉽게 개발 가능하다.

- 이 제품이 특히 유용한 분야는 어디인가? 현재 시장의 반응도 궁금하다

: 중소기업이나 교육기관에서 매우 유용하다. 교육기관이나 중소기업과 같이 양산 제품보다는 다양한 제품들을 빨리 만들고 싶은 기관들, 혹은 반도체 공정 실습을 해보고 싶은 기관들에 유용하다. 실제로 현재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도 우리 제품으로 반도체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재 연구용 시장에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으며 기존 제품을 빠르게 대체하는 중이다. 전 세계 4개국, 즉 미국, 호주, 싱가포르,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대학 및 연구소에 50대 이상을 판매했다. 올해 7월에 법인을 설립했는데 이 정도면 상당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호주 UTS(시드니 공과대학교)의 토비 샤넬리 연구팀에서는 우리 제품을 도입해 연구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점, 그리고 사용이 간편해 다양한 사용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 외에 국내 한양대 물리학과 정문석 교수 연구팀은 2차원 소재를 활용한 반도체 연구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비가 되었다고 호평했다.

또한 미국 USC(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윤여원 박사도 우리 제품이 바이오 응용에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범용성을 갖춘 점을 높게 평가하는 등,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 연구용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후 산업용으로 확대할 계획인가?

: 맞다. 현재는 연구용 제품이지만 연구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후 산업용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산업용 제품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 바이오, 패키징, 센서, 마이크로디스플레이 등 UV 기반 패턴 과정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산업에 확장 가능한 제품이다. 내년 하반기 중에 본격적인 산업용 결과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 우수한 기술을 갖추고 있더라도 인력이나 비용 등의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 많다. 플랑크랩도 비슷한 고민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나?

: 일단 인력 문제가 있다. 우리 제품은 하나의 기술만 있는 게 아니라 융합·복합 기술이다. 그러다 보니까 각 기술의 인재들을 데려오는 게 제일 어렵다. 그리고 최종 목표로 설정한 고객은 삼성이나 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지만 현재 상황에선 이런 대기업들에게 팔기 위한 네트워크 형성, 즉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은 우선 연구 시장부터 공략하면서 한편으론 본격적인 산업용 제품도 준비하고 있다. 연구소나 교육시설에서 우리 제품을 써보신 분들이 나중에 대기업에 가서도 우리를 좋게 봐주시지 않겠나.

-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감상은?

: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에 힘입어 이번 도전 K-스타트업의 왕중왕전까지 예비창업리그에서는 유일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5위로 국방부장관상까지 수상했다. 예비창업 부문에는 기술적 기반이 강하지 않은 기업이 많은데, 그중에서 우리가 거의 독보적인 성과를 낸 것이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이를 위해 많은 지원을 해줬다. IR 컨설팅을 비롯한 다양한 컨설팅 지원을 해줬다. 그리고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다양한 투자자도 연결해줬다. 뿐만 아니라 홍보 및 마케팅 지원도 해 줘서 투자 유치도 원활하게 진행 중에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엔지니어 출신의 기업인들 중에서는 기술력은 있지만 마케팅이나 경영에 대해서 덜 익숙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은데,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 프로그램은 이런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석범 플랑크랩 대표 / 출처=IT동아
김석범 플랑크랩 대표 / 출처=IT동아

- 향후 계획이나 추가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 플랑크랩은 내년 글로벌 확장을 위해 미국 및 베트남 등 여러 국가를 상대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그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당당한 수출 기업으로서 평가받는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

현재 3개국 대리점을 확보했으며, 더 많은 국가에 파트너를 유치해 글로벌 수출을 확대할 계획에 있다. 진행 중인 시드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기술 인력·양산 역량·글로벌 영업망을 강화해 B2B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일 예정이다.

향후 연구용 시장을 넘어 본격적인 산업 시장에서도 우뚝 서는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 연구용 시장을 넘어 반도체 첨단 패키징, HDI PCB, OLED,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 디지털 마스크리스 기술을 적용해 반도체 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끌고 싶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를 부탁드린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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