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록 대표(오른쪽)가 아내 박하영 씨와 함께 장수트레일레이스 대회를 개최하는 전북 장수종합운동장에서 밝게 웃고 있다. 산 달리기를 좋아한 그는 트레일러닝대회를 만들어 아내 고향 전북 장수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김영록 대표 제공.
2013년 해병대(병 1150기) 제대를 앞두고 마라톤 42.195km 풀코스 완주를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삼았다. 그해 6월 제대한 뒤 10km, 8월 하프코스, 그리고 9월 서울수복기념 해병대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를 4시간 20분에 완주했다. 첫 풀코스 완주였다. 이후 달리기에 빠졌고, 지금은 전북 장수 일대 산을 달리는 ‘장수트레일레이스’를 개최하고 있다. 김영록 락앤런(ROCKNRUN) 대표(33)는 산악마라톤으로 침체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어를 때부터 달리고 땀 흘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축구와 농구 등 운동은 다 했죠. 마라톤 완주한 뒤 달리기가 제게 딱 맞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달리기는 잡 생각을 하지 않고 저에게만 몰입힐 수 있어 좋았죠. 그래서 꾸준히 달렸어요.”
대학생이라 주로 저녁에 달렸다. 2015년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km를 완주했다. 2016년부터는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사막 마라톤에 빠졌다.
“복학해 국토대장정 등 다양한 도전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때 제주도 한라산을 달리는 대회를 알게 됐어요. 한라산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 겸사겸사 신청했는데 그게 트레일러닝대회였어요. 3일 동안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였죠. 그때 태극기를 달고 달리는 분이 있었어요. 국가대표도 아닌데…. 여쭤 보니 사막 마라톤 나갈 때 입는 복장이라더군요. ‘사막을 달린다고?’ 휴학하고 돈을 모아 2016년 4월 나미비아 사하라사막마라톤에 출전했죠.”
김영록 대표가 2016년 나미비아 사하라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뒤 포즈를 취했다. 김영록 대표 제공.힘들지만 사막을 정복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성취감도 대단했다. 2017년 중국 고비 사막, 2018년 남미 칠레 아타카마 사막도 달렸다. 2019년엔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 대회로 알프스산맥을 달리는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도 완주했다.
사막 마라톤은 극지 마라톤으로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에 더해 남극 마라톤까지를 세계 4대 메이저 대회로 부른다. 다 완주하면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칭호가 따른다. 사하라사막 마라톤은 당초 이집트 사하라사막에서 열렸는데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이어져 나미비아로 옮겨 치러지고 있다. 현재는 ‘나미브 레이스(Namib Race)’로 열리는데 대회 관계자들은 다시 사하라사막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로 사하라사막 마라톤이라고 계속 부르고 있다.
김영록 대표가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뒤 포즈를 취했다. 김영록 대표 제공.UTMB는 프랑스 샤모니를 출발해 이탈리아. 스위스를 돌아오는 알프스산맥을 달리고 돌아오는 코스에서 열린다. 174km에 누적 상승고도 9900m인 UTMB를 포함해 OCC(101km, 6050m), TDS(148km, 9300m), OCC(57km, 3500m), MCC(40km, 2350m), ETC(15km, 1200m), PTL(300km, 2만5000m) 등 7개 대회가 열린다. 참가자는 대회 출전 자격 인덱스(스톤)를 채운 사람들 중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추첨해 달릴 수 있게 한다. 보통 각 부분에 전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하는데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UTMB에 약 2500명 등 전체 1만 명가량만 달릴 수 있게 하고 있다.
김영록 대표가 2019년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 대회로 알프스산맥을 달리는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질주하고 있다. 김영록 대표 제공.김 대표는 “2018년 대학 졸업하고 호주 브루니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호주 트레일러닝 대회도 참가하고 돈도 벌기 위해서였다. 2019년 UTMB 완주하고 호주로 돌아가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했다. 김 대표는 “아내는 달리기를 전혀 해보지 않았다는데 잘 뛰었다. 알고 보니 고향 장수에서의 어릴 때 삶이 산을 걷고 뛰는 것이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함께 달렸다.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한 김영록 대표. 김영록 대표 제공.“2019년 12월 아내 시골집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서울에서 학교 다니던 아내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생활이 심해지자 그해 12월 장수로 내려가서 잠시 산다고 해 함께 내려왔죠. 그리고 지금까지 쭉 살고 있습니다. 귀촌한 셈이 됐죠.”
김 대표는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특기를 살려 ‘장수러닝크루’를 만들어 함께 달렸다. 장안산(1237m) 등 산이 즐비하고, 장수종합운동장, 왕복 20km인 승마체험장 승마 로드 등 달릴 곳이 많았다. 청년들이 모이니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러다 장수군의 청년 동아리 지원사업으로 어린이 마라톤대회를 개최했고, 자연환경이 좋은 장수의 산을 달리는 대회를 만들면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22년 9월 제1회 장수트레일레이스를 개최했다. 시작은 200여 명으로 미미했지만 반응은 좋았다. 장안산을 비롯해 팔공산(1149m), 백운산(1278m) 등을 지나는 청정코스가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김영록 대표(오른쪽)가 2024년 거제트레일러닝 100km를 완주한 뒤 아내 박하영 씨 손을 잡고 포즈를 취했다.김영록 대표 제공.4년째인 올해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간 열린 제6회 장수트레일레이스엔 1963명이 참가했다. 장수군민이 2만 명 남짓이니 그 10분의 1가량이 달린 셈이다. 그동안 메인인 장수트레일레이스(20km, 38km, 100km, 170km)를 비롯해 애견과 함께 달리는 캐니크로스 장수, ‘장수 한우랑 사과랑 축제’ 기간에 열리는 레드푸드레이스 등 다양한 대회를 만들었다. 어느 순간 장수가 트레일러닝의 성지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군민들도 자발적으로 도와준다. 최훈식 군수님을 포함한 장수군의 지원도 적극적이다. 이젠 지역의 대표적인 스포츠 이벤트로 성장할 기반을 갖췄다”고 했다.
김 대표는 “언젠가 대회를 만들겠다는 막연한 계획은 가지고 있었지만, 장수에 올 때 대회를 만들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살다 보니 장수에 달리기 좋은 곳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들게 됐다”고 했다. 사실 그는 많은 대회를 참가하면서 대회 운영 방식을 몸으로 체득했고, 국내에 극지 마라톤을 소개하고 트레일러닝대회를 만든 유지성 OSK(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 대표(54) 밑에서 일하면서 트레일러닝 전문가가 됐다. 그는 “사막 마라톤에 출전할 때 유지성 대표님을 알게 됐디. 유 대표님이 2015년 경기도 동두천에 코리아 50K란 트레일러인 대회를 만들 때도 스태프로 참여했고,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기도 했다”고 했다.
김영록 대표(오른쪽)가 아내 박하영 씨와 함께 장수트레일레이스 대회를 개최하는 전북 장수종합운동장에서 밝게 웃고 있다. 산 달리기를 좋아한 그는 트레일러닝대회를 만들어 아내 고향 전북 장수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김영록 대표 제공.
장수트레일레이스는 행정안전부 ‘2025년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향후 3년간 국비 6억 원을 지원받는다.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은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해 마을 또는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사업이다. 김 대표는 이 지원금으로 ‘장수 샤모니 트레일 빌리지(Chamonix Trail Village)’를 조성할 계획이다. 장수를 UTMB를 개최하는 프랑스의 샤모니-몽블랑 같은 곳을 키우겠다는 각오다.
“아직 해야 할 게 많습니다. 숙소와 식당 등 부족 점이 많아요.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편하게 묵고 먹게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달릴 때 안전도 더 신경 써야 하고요. 프랑스 샤모니는 주민 전체가 대회를 치른다고 보면 됩니다. 나와서 박수 쳐 주고, 식당도 늦게까지 운영해주는 등 대회 때는 모든 게 참가자들을 위해 돌아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어요. 트레일러닝 문화가 잘 자리 잡혀 있습니다. 군민들을 포함해 장수군 전체가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장수도 샤모니처럼 될 겁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기대해주세요.”
김영록 대표가 트레일러닝대회를 달리다 공중으로 뛰어 오르고 있다. 김영록 대표 제공.김 대표의 마라톤 풀코스 최고 기록은 지난해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59분 2초로 마스터스 마라토너들 꿈의 기록인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다. 대회를 개최할 땐 준비로 바빠 자주 달리지 못하지만 매일 30분에서 1시간 짬을 내 장수읍 일대를 달리며 스트레스를 날리고 있다.
경기 시흥에서 자란 김 대표가 아내 박하영 씨(28)와 함께 산 달리기 하나로 장수를 탈바꿈시키고 있다.
김영록 대표(오른쪽)가 생후 5개월여 된 딸을 안고 있는 아내 박하영 씨와 함께 최근 문을 연 ‘장수 샤모니 트레일 빌리지(Chamonix Trail Village)’ 사무실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장수=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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