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빈혈에 잇몸 출혈 안 멈춘다면 의심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5일 01시 40분


[이겨내자 혈액암] 〈上〉 급성백혈병 치료
동아일보-이대목동병원 공동기획… 급성백혈병 방치하면 생명 위험
1차 항암화학요법 진행한 뒤, 효과 없으면 면역항암치료 시행
조혈모세포 이식, 과거보다 발전… 최근 생존율 50∼70%로 늘어나
“꾸준한 치료와 투병 의지가 관건”

이석 이대목동병원 혈액내과 교수가 혈액암이 의심되는 환자의 골수검사를 하고 있다. 급성백혈병을 진단하려면 골수검사를 필수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이석 이대목동병원 혈액내과 교수가 혈액암이 의심되는 환자의 골수검사를 하고 있다. 급성백혈병을 진단하려면 골수검사를 필수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2022년 한 해 국내에서 혈액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2만3000여 명이다. 전체 신규 암 환자의 8% 정도다. 매년 혈액암 환자는 증가하고 있다. 혈액암은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치료 자체도 어렵다. 위암이나 대장암처럼 장기에 걸리는 고형암(固形癌·암세포가 자라면서 덩어리를 이루는 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수술이 가능하지만 혈액암은 그럴 수도 없다. 다만 갈수록 치료법이 개선되고 신약이 속속 나오면서 완치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병에 대해 많이 알수록 치료 효과도 그만큼 커진다. 동아일보는 이대목동병원과 공동으로 혈액암을 집중 분석하는 2회 시리즈를 진행한다.》


40대 중반 남성 민철구 씨(가명)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올랐다. 피로감도 극심했다. 온 몸이 쇠약해진 느낌이었다.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했더니 백혈구가 늘어나 있었다. 반면 적혈구와 혈소판은 감소했다. 당시 치료를 담당한 이석 이대목동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백혈병을 의심했다. 골수검사 외에도 추가로 정밀검사를 시행했다. 예상대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었다.

이석 혈액내과 교수
이석 혈액내과 교수
이 교수는 1차로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했다. 썩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약물을 바꿔 2차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했지만 이번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이 교수는 새로운 면역항암제를 투여했다. 극적으로 암세포가 사라졌다. 이 교수는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조혈모세포(造血母細胞)를 이식했다.

이 모든 치료에 6개월이 소요됐다. 이후 민 씨는 암에서 해방됐다. 그로부터 3년 6개월이 흘렀다. 민 씨는 면역억제제를 비롯해 모든 약을 다 끊고 회사에도 복직했다.

● 급성백혈병이란

뼈 안에는 골수라는 부드러운 조직이 있다. 이 골수에는 조혈모세포가 다량 들어있다. 조혈모세포는 혈액세포를 만드는 ‘어머니 세포’란 뜻이다. 이 조혈모세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이 제대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조혈모세포에 이상이 생기면 정상 혈액세포가 덜 만들어지고, 대신 비정상적인 세포들이 증식한다. 이것이 바로 백혈병이다.

백혈병은 악화 속도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나눈다. 급성의 경우 순식간에 악화한다. 치료하지 않으면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할 수 있다. 만성백혈병은 대체로 잘 관리하면 사망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암이 발생한 부위가 어디냐에 따라 보통은 골수성과 림프구성으로 구분한다. 어떤 유형이냐에 따라 사용하는 항암제가 다를 뿐, 증세나 치료법은 대체로 같다.

급성백혈병은 주로 성인에서 발생하지만 소아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성인의 경우 대부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지만, 소아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더 많다. 전체적으로는 급성 골수성 환자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보다 조금 많은 편이다.

● 증세를 잘 살펴야

만약 급성백혈병이 발병했는데도 3개월 이내에 발견해 치료하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 기간에 발견하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완치도 가능하다. 문제는 급성백혈병 발생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병의 예방법이나 확실한 조기 진단법도 없는 상태다.

다만 건강검진이나 혈액검사를 통해 급성백혈병을 일찍 발견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석 교수는 “빈혈, 감염, 발열 같은 증세가 나타나서 대수롭지 않게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충격에 휩싸이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급성백혈병에 걸리면 몸에 증세가 나타난다. 몸의 변화를 잘 살펴야 한다. 일단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많아지면서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에 취약해진다.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열이 나거나 기침 같은 증세가 오래 지속된다. 이런 증세가 1주일 이상 나타나고, 뼈와 관절 통증이 동반된다면 백혈병을 의심해야 한다.

빈혈 증세도 나타난다. 적혈구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피곤하고 전신 쇠약감이 느껴지거나, 어지럼증이 있다면 혈액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코피가 안 멈출 수도 있다. 혈소판이 부족해 피가 멈추지 않으며 며칠 동안 피가 나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양치질 도중 잇몸에서 난 피가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어딘가 부딪친 적도 없는데 신체 이곳저곳에 멍이 나타나는 것도 혈소판 부족 때문이다.

이규형 혈액내과 교수
이규형 혈액내과 교수
이규형 혈액내과 교수는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면 혈액암을 의심해 보는 게 옳다. 반드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골수성일 경우 빈혈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나고, 림프구성의 경우 림프절(샘)이 부어오르는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증세가 급속하게 진행되면 폐렴이나 패혈증, 뇌출혈로 이어질 수도 있다.

● 치료는 어떻게

병의 정확한 진단은 혈액 및 골수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냐를 결정하기 위한 정밀검사를 추가로 진행한다. 보통은 2, 3일 후 검사 결과가 나온다.

두 질병 모두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한다. 항암제 여러 개를 혼합해 투입하는 방식이다. 보통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1주일,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2주일 동안 입원해서 매일 집중적으로 항암제를 투입한다. 항암제는 백혈병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죽인다. 따라서 1∼2주의 휴식 기간을 거친다.

휴식 기간이 끝나면 다시 항암치료를 한다. 그때마다 항암화학요법의 치료 효과를 평가해 약물을 조정한다. 이어 2차 치료에 돌입한다. 이런 식으로 보통 6∼8차에 걸쳐 항암화학요법을 진행한다.

이석 교수는 “급성백혈병 환자 30% 정도는 항암화학요법만으로 사실상 완치에 이를 정도로 상태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중간에 재발하거나 전혀 약물 효과가 없는 환자에 대해서는 표적치료제를 투입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한다. 필요하다면 면역항암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표적항암제를 쓰면 90% 이상이 완치하는 유전자 유형도 일부 밝혀진 바 있다. 앞으로 완치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항암요법을 끝낸 후에도 재발할 위험이 큰 환자에게는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기도 한다. 이 경우 병에 걸린 환자의 조혈모세포를 사전에 없앤 후 새로 공여받은 조혈모세포를 이식한다.

● 생존율 점점 높아져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려면 공여자와 환자의 백혈구 항원(HLA)이 100% 일치해야 했다. HLA는 쌍으로 돼 있다. 부모로부터 각각 하나씩 받는다. 따라서 HLA가 100% 일치할 수 있는 사람은 형제가 유일하다.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서 HLA가 같은 경우를 찾을 수도 있지만 매우 드물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50%만 일치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에게 조혈모세포를 주는 것도, 반대로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규형 교수는 2011년 HLA가 50%만 일치해도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능한 방법(반·半 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조혈모세포 이식이 활발해졌다. 이 교수는 “요즘 조혈모세포 이식 전체 건수의 절반 정도는 반 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이다”라고 말했다. 보통 헌혈하는 것처럼 조혈모세포를 추출한다. 4∼5시간 걸리며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조혈모세포는 정상 수치로 돌아간다.

이 교수는 10년 전 이식 사례를 들려줬다. 당시 10대 후반 강인철 군(가명)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했는데 약이 잘 듣지 않았다. 강 군은 어머니에게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치료가 잘 되나 싶었는데, 얼마 후 백혈병이 재발했다. 강 군은 아버지에게서 다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이후 백혈병이 사라졌다. 현재 20대 후반이 된 그는 건강을 완전히 되찾았다.

최근 카티(CAT-T) 세포치료가 도입되면서 치료율을 높이고 있다. 면역세포를 환자 몸에서 뽑은 후 체외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면역세포 기능을 극대화한 뒤 다시 주입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치료법은 타깃으로 하는 항원이 림프구성 백혈병에만 있어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석 교수는 “좋은 치료법과 약물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 의지와 결합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두 암의 생존율은 과거에는 30%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50∼70%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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