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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씨(가명)는 50대로 접어든 후 자주 깜빡깜빡한다. 머릿속이 뿌연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나마 큰 낭패를 본 적은 없다. 다만 얼마 전 일이 마음에 걸린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중이었다. 가끔 연락하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가 “어디까지 왔냐?”라고 물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 박 씨는 “급한 일이 생겨서 가지 못할 것 같다. 미리 연락하려고 했는데 너무 정신이 없었다”라고 둘러댔다. 단순한 건망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 씨는 치매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중년 세대라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정말 치매의 전조 증세일까.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 마흔 넘으니 깜빡깜빡… 이유가 있다 나이가 들면 뇌도 늙는다. 건망증은 ‘뇌의 노화’로 발생한다. 사실 건망증만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몸의 사령탑인 뇌가 노화하면 일상생활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가령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거나 주차가 어려워진다. 결정을 내리기도 힘들고, 내리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성격이 더 꼬장꼬장해지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60대 이후에 흔하지만, 40대부터 시작될 수 있다. 서 교수는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60대 이후에야 뇌의 노화를 의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40대부터 뇌세포가 위축되고 대뇌피질이 얇아지면서 뇌의 노화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뇌의 바깥층을 대뇌피질이라고 한다. 여러 영역으로 나누는데, 전두엽 공간이 가장 넓다. 전두엽은 기억, 사고, 감정 등을 총괄한다. 노화로 전두엽 부피가 줄어들고 기능이 떨어지면 건망증이 심해지고, 제대로 기획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뇌의 부피가 줄어들면 혈류량도 감소한다. 뇌는 전체 장기의 2% 정도이지만 에너지의 20% 이상을 쓴다. 혈류량이 감소하면 에너지를 덜 받기 때문에 정보처리 속도도 늦어진다. 사소한 것들을 곧바로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게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증세는 모두 병적인 것일까. 서 교수는 “중년 이후 건망증은 대부분 뇌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병적인 증세를 잘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건망증일까, 인지 장애일까 건망증이 악화하면 인지 장애, 인지 장애가 악화하면 치매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 가운데 건망증과 가벼운 인지 장애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서 교수는 “깜빡하는 상황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느냐, 즉 반복성 여부가 건망증과 인지 장애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힌트를 줬을 때 “그랬었지”라며 과거 사실을 기억해 낸다면 건망증에 가깝다. 이 기준에 따르면 박 씨는 건망증 단계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잊는 일을 반복하지 않았고, 친구가 알려주니 바로 실수를 알아차렸기 때문.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고 대신 휴대전화를 안에 둔 채로 문을 닫았는데 완전히 까먹었다고 치자. 약속을 잊는 것보다 사안이 심각해 보일 수 있다. 인지 장애에 가까울까. 서 교수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반복하느냐, 힌트를 주면 알아차리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했다. 약속 잊기를 반복하며, 그 사실을 일깨워줘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면 인지 장애 단계로 볼 수 있다. 인지 장애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서 교수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수록 ‘병적인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가령 치매 단계라면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길 수도 있다. 인지 장애 단계에 근접하면 성격이 변하는 경우가 많다. 서 교수는 “대범하던 사람이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화를 잘 낸다면 전문가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음식 맛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서 교수는 “가족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이런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기억력 소실에 대한 걱정 버려야 건망증 단계인 데도 치매 걱정에 병원을 찾는 이가 적잖다. 뇌 건강을 해치는 행동이다. 서 교수는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곱씹는 습관은 인지 장애나 치매의 가장 나쁜 인자”라고 강조했다. ‘기억력이 더 떨어지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부터 멈춰야 한다는 뜻이다. 건망증 단계에서는 뇌를 자극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좋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몰입하면 새로운 뇌신경 세포가 만들어지거나 도파민 같은 호르몬이 분비돼 인지 기능이 개선된다. 서 교수는 “외국어 공부나 악기 연주 같은 게 좋은데, 정말 즐기면서 도전하는 기분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일 가던 길을 바꿔 다른 길을 찾아보는 등 일상에서부터 새로운 것을 찾는 방법도 괜찮다. 다만 인지 장애 단계 이후라면, 새로운 도전은 권장되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뇌가 새로운 도전을 스트레스로 여기기 때문이다. 뇌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메모하고 물건을 같은 장소에 두는 식으로 ‘생활 루틴’을 만들어 실천하는 게 좋다. 저체중이라면 살을 찌우는 게 좋다. 서 교수는 “저체중은 뇌 노화를 유발한다. 게다가 저체중일 때 치매 발생률이나 사망률 모두 높다”고 설명했다. 물론 비만이 좋을 수는 없다. 배 둘레가 넓어지는, 이른바 내장 비만일 때도 저체중일 때와 결과가 같다. 다만 허벅지나 팔다리 피하지방에 있는 렙틴 성분은 뇌 노화를 막아준다. 지방도 가려서 빼야 한다는 이야기다.● 생활 습관 개선이 정답뇌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뇌의 맷집을 키우면 된다. 서 교수는 “이를 뇌의 ‘인지 예비능’이라고 하는데, 노화에 대비해 뇌의 저장고를 넉넉히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이후 꼭 필요한 습관으론 어떤 게 있을까. 일단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삼시세끼가 좋지만 평상시에 두 끼만 먹는다면 그 습관이라도 지키는 게 좋다. 폭식과 과식은 피한다. 두부, 콩, 등푸른생선, 살코기를 비롯해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자. 서 교수는 “단백질에 있는 성분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뇌에 좋다는, 이른바 ‘뇌 영양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건강기능식품이다. 뇌 기능을 개선하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되도록 매주 5회, 30분 이상 운동하자. 옆 사람과 얘기할 때 숨 차는 강도로 운동하는 것이 좋다. 하루에 7500보 이상은 채운다. 근력 운동도 뇌 건강에 좋다. 근육에서 뇌 기능을 강화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나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 특히 여자의 경우 허벅지 근육이 발달하면 치매 예방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를 이완시키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자. 좋지 않은 생각은 털어 버려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인들을 자주 만나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 요즘 짧은 포맷의 영상 콘텐츠가 인기인데, 일방적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이런 형식은 뇌 기능을 떨어뜨린다. 모바일 게임을 하더라도 머리를 많이 쓰는 걸 택하자. 중년 이후에 술과 담배는 되도록 끊어야 한다. 뇌는 심장, 폐, 간, 콩팥 등 모든 장기와 연관돼 있다. 장기가 손상되면 뇌도 다친다. 서 교수는 “여러 연구 결과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도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면 뇌 기능이 유지됐다. 만성질환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고혈압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한다. 별다른 자각 증세가 없다가 어느 날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심·뇌혈관 질환에서 고혈압은 가장 위험한 인자로 꼽힌다. 진단 기준을 알아 두자. 국내에서는 수축기/이완기 혈압이 각각 140/90mmHg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이때는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이 싫다며 거부했다가는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최근 심·뇌혈관 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이 세계적으로 엄격해지고 있다. 특히 고혈압과 콜레스테롤 목표치를 낮추는 추세다. 유럽심장학회는 2년 전, 약물 치료 중이라면 혈압을 120∼129mmHg까지 낮출 것을 권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미국심장학회와 미국심장협회도 지난해와 올 3월 잇달아 고혈압과 콜레스테롤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원호연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임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예방과 치료 효과가 높은 방향으로 지침을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학회들도 유럽과 미국의 변화를 반영해 진료 지침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심장학회·미국심장협회 가이드라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을 원 교수와 살펴봤다. ● “고혈압, 지켜보자 → 적극 치료” 미국 고혈압 진단 기준은 국내보다 엄격하다. 130∼139/80∼89mmHg부터 1기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국내의 ‘고혈압 전 단계’가 미국에서는 고혈압 환자인 셈. 단, 모든 환자에게 약물을 처방하지는 않았다. △심혈관 질환 병력이 있거나 △당뇨병을 앓고 있거나 △만성 콩팥 질환이 있거나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10% 이상일 때만 약을 줬다. 이런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생활 습관을 개선토록 했다. 새 가이드라인에서도 고혈압 진단 기준은 그대로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달라졌다. 1기 고혈압의 경우 3∼6개월 동안 생활 습관을 개선해도 효과가 없다면 약물 처방을 권고했다. 오래 두지 말고, 적극 치료하라는 뜻이다. 원 교수는 “가이드라인 개정에서 보이는 가장 큰 변화다. 일찍 치료에 개입해 심·뇌혈관 질환 발병률을 낮추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혈압이 아주 높지 않더라도 방치하면 혈관은 손상된다. 그 손상이 누적되면 심·뇌혈관 질환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새 가이드라인은 고혈압 환자라면 1기 고혈압 수치 이하로 목표치를 잡으라고 권했다. 더불어 30∼64세 모든 성인에 대해 ‘가급적’ 120/80mmHg 미만으로 혈압을 낮추라고도 했다. 국내에서는 미국의 1기 고혈압에 해당하는 고혈압 전 단계일 때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약을 처방한다. 다만, 고위험군이라면 고혈압 전 단계라도 약을 쓸 수 있다.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다면, 고혈압 전 단계에서부터 약물을 복용하는 걸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피떡 만드는 리포단백(a) 검사 권고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몸에 나쁜 LDL콜레스테롤은 100mg/dL 미만이면 정상이다. 130mg/dL을 넘어서면 위험군으로 규정한다. 몸에 좋은 HDL콜레스테롤이 낮아도 문제다. 60mg/dL 이상을 정상으로 보고 있으며 40mg/dL 미만은 위험군이다. 특히 고위험군일수록 LDL콜레스테롤을 낮추도록 하고 있다. 심혈관 질환 고위험군은 70mg/dL 미만, 심·뇌혈관 질환 병력이 있는 초고위험군은 55mg/dL 미만으로 유지할 것을 권한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미국의 새 가이드라인은 한국의 기존 지침과 비슷하다. 다만 위험도가 높다면 30대부터라도 약물 치료를 권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고혈압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조기 치료를 강조한 것. 새 가이드라인은 ‘리포단백(a)’라는 혈중 단백질에 주목했다. 성인이라면 1회 이상 혈액 검사로 이 단백질 수치를 확인하라는 것. 이것은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 물질(지단백) 중 하나다. 혈관에 잘 달라붙어 혈전(피떡)을 만든다. 리포단백(a) 농도가 30mg/dL 미만이면 정상이다. 50mg/dL 이상이면 고위험, 100mg/dL 이상이면 초고위험군이다. 초고위험군의 경우 심장병 위험이 2배 높아진다. 리포단백(a)의 90% 이상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식습관 개선이나 운동으로 숫자를 줄일 수 없다. 원 교수는 “여러 방법을 써도 LDL콜레스테롤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리포단백(a)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이 수치가 높다면 유전적으로 심혈관 질환 위험이 크다는 뜻이니 더 주의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다행히 최근 관련 약물의 임상 시험이 진행되고 있어 결과에 따라 몇 년 이내에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 심혈관 질환 위험도 예측 가능 미국 새 가이드라인은 심혈관 질환을 예측하기 위해 프리벤트(PREVENT)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미국심장협회 홈페이지(professional.heart.org)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종전에는 40대 이후부터 심혈관 질환 위험도를 측정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30대부터 확인할 수 있다. 원 교수는 “이 또한 위험 요인이 있다면 나이를 앞당겨 적극적으로 치료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을 가동한 뒤 혈압, 콜레스테롤, 체질량지수, 사구체여과율, 당화혈색소 등 건강검진 데이터를 입력하면 된다. 10년과 30년 후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 수치가 곧바로 나온다. 43세 남성 A 씨와 57세 남성 B 씨 데이터를 입력해 봤다. A 씨는 10년 내 심혈관 질환 위험도가 4.3%, 30년 위험도가 23.8%로 나타났다. B 씨는 각각 5.7%와 23.6%로 나타났다. 10년 위험도는 나이가 많은 B 씨가 높았지만, 30년 위험도는 오히려 A 씨가 높았다. 왜 그럴까. B 씨는 혈압이 정상 범위였다. 당화혈색소가 다소 높았지만 잘 관리하는 편. LDL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약물도 복용하고 있었다. 반면 A 씨는 혈압과 체질량 지수,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높았다. 아직 젊어 10년 위험도는 낮았지만, 생활 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30년 이내에 발병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 것. ● 꾸준한 관리만이 예방의 비결결국 적절한 관리가 최선이다. 가이드라인은 소금 함량을 줄일 것을 당부했다. 원 교수는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기에 섭취량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싱겁게 먹는 것, 국물을 덜 먹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체중 조절도 필요하다. 덜 먹고 운동해야 한다. 원 교수는 “주 5회, 30분 이상씩 중강도 이상으로 운동해야 한다. 숨이 약간 가쁘고 땀이 날 정도면 좋다”고 설명했다. 평지만 느릿하게 걷기보다는 굴곡이 있는 지역을 빠른 속도로 걷는 것이 추천된다. 먹는 방식도 고쳐야 한다. 일단 가공식품은 피하는 게 좋다. 채소와 과일도 많이 먹으면 체중 증가로 이어진다. 원 교수는 “좋은 음식을 덜 먹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잘 자야 한다. 수면무호흡 상태라면 혈압과 콜레스테롤, 혈당을 모두 올린다. 특히 밤에 혈압이 높아지는 ‘야간혈압’은 뇌압을 높여 뇌졸중 위험도 높인다. 별 이상이 없다고 무심해서는 안 된다. 원 교수는 “가능하다면 매년, 최소한 2년에 한 번 정도는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인하라”고 말했다. 고위험군이라면 매년 검사를 받는 게 좋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콜레스테롤 검사 국가 검진 주기를 4년에서 2년으로 줄여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 게 당연히 좋다. 스트레스도 줄여야 한다. 원 교수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다.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게 최선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대 초반 여성 김선희 씨(가명)는 몇 년 전 골감소증 진단을 받았다. 키가 160cm였는데, 몸무게가 32kg에 불과했다. 지독하게 마른 이유가 있었다. 살찌는 게 너무 싫었다. 안 먹었고, 먹은 후에는 토해냈다. 거식증이었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생리불순이 나타났다. 곧 무월경으로 악화했다. 골밀도가 너무 낮아, 그대로 두면 뼈가 쉽게 부서질 것 같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병행하면서 음식량을 늘렸다. 칼슘과 비타민D 보충제도 투입했다. 덕분에 느린 속도였지만 조금씩 체중이 늘었다. 지금은 40kg을 웃도는 상황. 골감소증도 많이 호전됐다. 중단됐던 월경도 다시 나타났다.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20∼40대 젊은 여성 골감소증 환자가 확실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골감소증이나 골다공증(뼈엉성증)은 ‘노인병’이라고 여겨졌다. 진료를 받는 젊은 여성이 실제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20대와 30대 환자가 매년 2000∼3000명이다. 40대 환자도 1만7000명을 넘어섰다. ● 식이 제한 다이어트가 큰 원인 젊은 여성의 뼈 건강이 왜 악화하고 있을까. 가장 큰 원인으로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꼽을 수 있다. 운동보다는 음식 섭취량을 극도로 줄이는 방식의 다이어트가 대표적이다. 김 씨 사례와 비슷하다. 하 교수는 “극단적으로 음식을 줄이면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덜 나온다. 이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에스트로겐은 뼈를 부수는 세포(파골세포)의 기능을 억제한다. 뼈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 덕분에 젊은 여성들은 대체로 뼈가 튼튼하다. 여성호르몬은 폐경 이후 급격하게 줄어든다. 보호막이 사라지니 뼈는 약해진다. 폐경 이후에 골감소증이나 골다공증이 많이 생기는 이유다. 하 교수는 “음식을 극도로 제한하면 섭식장애가 먼저 나타나고, 생리불순이나 무월경이 동반되며 뼈가 약해진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의 햇볕 기피도 뼈 약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피부 건강을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야외 활동 자체를 줄이거나 아예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여성도 있다. 이 경우 비타민D 수치가 크게 떨어진다. 20대와 30대는 모든 연령을 통틀어 비타민D 수치가 가장 낮다. 비타민D 수치가 낮으면 뼈 건강에 특히 중요한 칼슘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다. 골밀도 검사를 받는 젊은 층이 많아진 것도 환자가 늘어난 이유다. 다만 검사 결과를 과잉 해석해서 환자가 많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0∼40대의 엄격한 진단 기준을 따르지 않고 50대 이후 기준을 따르다 보니 젊은 골감소증 환자가 많아졌다는 것. ● 약물보다 생활 습관 개선이 먼저 골감소증 단계에서 생활 습관을 개선하면 골밀도를 높일 수 있다. 반면 방치하면 60% 정도는 골다공증으로 악화한다. 골감소증 단계에서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이유다. 50대 이후라면 뼈를 강화하는 약물을 쓴다. 최근에는 뼈를 만드는 세포(조골세포)를 늘리고 기능을 강화하는 ‘골 형성 촉진제’가 주목받고 있다. 주사제 형태로 매달 1회 투입한다. 하 교수는 “예전에는 파골세포를 억제하는 약물이 대부분이었고 조골세포를 늘리는 약물은 거의 없었다. 조골세포는 운동으로만 늘려야 했기에 뼈가 생성되는 시간이 더뎠다”고 말했다. 골 형성 촉진제를 투입하면 골밀도 증가 속도가 기존의 7배 정도로 빨라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2회 이상 골절이 있었거나 △파골세포를 억제하는 약이 효과가 없는 등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골대사학회는 조건을 완화해 줄 것을 보건 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20∼40대 젊은 여성은 치료법이 다르다. 일단 치료제를 곧바로 처방하지 않는다. 음식을 안 먹거나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등 잘못된 생활 습관이 뼈 건강 악화의 원인이기 때문. 그 습관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는 크다. 게다가 아직 가임기라서 약물이 미래의 출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생활 습관을 교정하는 게 첫 번째 치료다. 상황을 보면서 칼슘과 비타민D를 추가로 처방한다. ● 탄산음료 줄이고 우유 늘려야평소 뼈 건강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우선 뼈를 약하게 만드는 음식부터 피하자. 카페인과 탄산이 든 음료나 방부제가 들어있는 가공식품이 대표적이다. 뼈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성분은 칼슘과 인이다. 이런 음식들은 칼슘과 인을 몸 밖으로 배출해 버린다. 두 성분의 적절한 조합도 방해한다. 하 교수는 “칼슘과 인이 잘 섞여야 품질 좋은 시멘트 같은 뼈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을 많이 먹으면 푸석푸석한 시멘트처럼 뼈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뼈 건강은 ‘골밀도 80%, 품질 20%’ 비중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뼈의 품질 검사 방법은 아직 없다. 뼈 품질이 나빠도 골밀도에 문제가 없으면 ‘정상’으로 나온다. 하 교수는 “가족력, 과거 골절 이력 등을 검토해 뼈 품질을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칼슘과 인이 뼈에 좋다고 해서 무조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하 교수는 “칼슘과 인은 부족해도 문제, 과해도 문제인 무기질이다. 딱 적당한 만큼만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양제보다는 음식 형태로 섭취하는 게 좋다. 영양제는 과도할 경우 몸에 쌓이고, 요로결석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음식으로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상관없다.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소변으로 배출된다. 단, 최소한의 섭취량은 지켜야 한다. 칼슘의 경우 하루에 800∼1000mg은 섭취해야 한다. 하루 세 끼를 정상적으로 먹는다면 보통 500∼600mg의 칼슘은 챙길 수 있다. 추가로 300mL 우유 한 잔만 마셔도 충분한 것. 칼슘과 인은 멸치와 유제품에 풍부하다.● 빨리 걷기-달리기-줄넘기 좋아흡연과 음주는 뼈를 약화시킨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운동도 필요하다. 조골세포는 운동할 때 생성되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학교에서 ‘체력장’을 시행한 세대보다 그 이후 세대가 뼈가 약하다는 보고가 있다. 운동량이 그만큼 줄었기에 나타나는 결과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10대와 20대 때 뼈를 튼튼하게 할수록 건강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걷기 같은 운동도 좋다. 하지만 뼈 건강을 위해서라면 다소 빠른 속도로 걸어야 한다. 그래야 뼈에 자극이 간다. 하 교수는 “뼈가 자극을 받아야 조골세포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튼튼한 뼈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뼈에 자극을 더 많이 주려면 강도가 높은 달리기, 줄넘기, 계단 오르기 같은 운동이 좋다. 달리기가 힘들면 속도를 낮춘 ‘슬로 조깅’, 그것도 어렵다면 빨리 걷기가 좋다. 이런 유산소 운동은 주 3회 이상 30분씩 꾸준히 하는 게 좋다. 뼈에 자극이 가해지지 않는 수영은 뼈 건강 측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운동이다. 근력 운동도 필요하다. 하 교수는 “근육과 뼈는 서로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근육이 강해지면 뼈도 강해진다. 근육이 빠지면 뼈 밀도도 낮아진다”고 말했다. 스쾃이나 아령 들기 같은, 가벼운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K2 전차, 천무 다연장로켓 등 우리 군 주력 무기 체계가 해외에서 인기다. ‘K방산’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은 글로벌 방산 시장의 핵심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금융 문제로 난관에 부닥칠 때도 있다. 지난해 말 폴란드 2차 방산 수출 과정에서 그랬다. 한국수출입은행은 1차 수출 때 폴란드 정부에 대출 형태로 금융을 지원했다. 2차 때는 그럴 수 없었다. ‘동일 차주 여신 한도 제한’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폴란드 정부에 일정 비율(40%) 이상 대출하지 못한다. 금융 문제로 거래가 무산될 위기를 맞은 것. 이때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우리 정책금융 지원액인 52억 달러 가운데 무보가 39억 달러를 보증하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거래는 성사됐다. 무보가 보증기관으로서 수출을 이끈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무보는 정부 투입 예산의 20∼30배를 지원할 수 있어 대형 프로젝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지난달 루마니아 재무부와의 협상에서도 무보의 역할이 컸다. 무보는 루마니아 재무부 앞으로 9억 유로 금융을 제공했다. 루마니아는 우리 기업 참여를 전제로 한 방산물자 조달 등 국책 프로젝트 계약 이행에 이 자금을 사용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의 수주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발판이 된 것. 무보는 지난해 11월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아랍에미리트(UAE) 최대 국영 석유회사 애드녹에 20억 달러 규모 선(先)금융을 제공한 바 있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도 넓히고 있다. K방산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핵심 부품과 소형 화기를 책임지는 ‘허리 기업’과의 조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방산 중소기업 다산기공㈜ 지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무보는 수출 계약 시 수입자가 요구하는 은행 보증서에 대해 손실을 보장하는 형태인 수출보증보험을 지원했다. 이 기업은 은행에 담보로 묶인 자금을 제작 공정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보증 사고가 발생하면 은행도 무보에서 손실을 보상받는다. 지난해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전담팀을 신설한 이후 방산 중소기업 수출 거래를 직접 지원한 첫 사례다. 최근에는 ‘수출 공급망 강화 보증’이 주목을 받고 있다. 대기업과 은행이 무역보험기금에 출연하면 무보가 출연 규모의 20배에 이르는 수출 자금을 중소기업 협력사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민간 자본과 공적 기금의 결합으로 정부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지난해 8월 현대자동차·기아와 하나은행이 400억 원을 출연해 6300억 원 규모 협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HL만도, 포스코, HD현대중공업, 콜마, 무신사 등으로 확산 중이다. 현재까지 누적 협약 규모는 1조8000억 원에 이른다. 무보는 최근 이 모델을 방산 부문으로 확대하기 위해 산업통상부와 협업하고 있다. 이 같은 K방산 상생 금융 모델은 방위산업의 기초 체력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장영진 무보 사장은 “무역보험은 한정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해 수출길을 여는 ‘황금 지렛대’다. 기금의 레버리지 효과를 바탕으로 방산 같은 전략산업의 성장이 자금 부족으로 멈추지 않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척추 수술을 받아도 때론 재발한다. 10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은 15∼18%이다. 통증이 전혀 개선되지 않거나 더 악화하는데, 이를 ‘척추 수술 실패 증후군(FBSS)’이라고 부른다. 재발 원인은 다양하다. 척추 퇴행일 수도 있고, 수술이 불완전했을 수도 있으며, 나사못 같은 부품이 손상됐을 수도 있다.그 어떤 경우든 재수술은 난도가 높다. 척추 내부 구조가 상당히 변형됐을 가능성이 큰 데다 나사못이 여기저기 박혀 있을 수 있어서다. 조대진 강동경희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재수술 횟수가 늘어날수록 수술은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조 교수는 얼마 전 성영희 씨(65)의 5번째 척추 수술을 집도했다. 성 씨는 FBSS, 척추 협착증, 측만-후만증 진단을 받았다. 허리를 펴지 못했고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 첫 수술 3개월 만에 재수술 1990년대 후반, 처음 척추 디스크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왼쪽 발목이 저렸다. 저림 증세는 곧 왼쪽 다리 전체로 퍼졌다. 이어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척추 수술하면 몸이 더 망가진다”며 성 씨를 말렸다. 잘못된 상식을 믿었다. 한의원 ‘물리치료’나 주사에 의존했다. 고통은 심해졌다. 그토록 좋아하던 등산도 중단해야 했다. 급기야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얼마 후에는 몸도 잘 안 움직여졌다. 이젠 수술을 피할 수 없었다. 2002년 3월, 성 씨는 한 지역 병원에서 허리뼈 4번과 5번 척추 유합술을 받았다. 병든 디스크를 제거하고 인공 구조물을 넣은 뒤 나사못으로 척추 마디를 고정하는 수술이다. 수술 후 몸이 가벼워졌다. 헬스클럽을 찾아 열심히 재활 훈련을 했다. 3개월이 흘렀다. 그날도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하고 있었다. 척추 근처에서 ‘두둑’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대로 드러누웠다. 몸에 힘을 줘도 일어날 수 없었다. 의사는 수술 부위 주변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술 범위를 좀 더 넓힐 걸 그랬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척추 재수술 원인 중 하나다. 수술한 부위 주변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운동 등으로 척추 마디에 과도한 압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