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경각심 깨우는… 북극-남극의 노랫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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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구환경과학 연구팀
극지 기후 데이터로 음악 작곡
강수량-온도 등 소리로 변환
카이스트서도 알고리즘 개발해… 기후 예측 데이터로 ‘사계’ 편곡

과학 데이터를 첨단기술로 음악화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과학 데이터를 첨단기술로 음악화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과학자들이 극지 기후 데이터를 이용해 현악 4중주 음악을 작곡했다. 기존에도 과학 데이터를 소리로 변환하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단순 변환을 넘어 예술가의 창작력을 더한 결과물은 이번이 처음이다. 음악을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이끌겠다는 연구팀의 야심이 담겼다.

나가이 히로토 일본 릿쇼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북극과 남극에서 수집한 기후 데이터를 음향화한 뒤 예술적인 방법을 동원해 작곡한 음악을 국제학술지 ‘i사이언스’에 18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나가이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과학자이자 작곡가로 활약했다.

연구팀이 만들어낸 음악은 총 6분 길이의 ‘현악 4중주 No.1 극지 에너지 수지’라는 제목의 음악이다. 먼저 그린란드 빙하의 빙핵 시추 지점,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의 인공위성 기지, 남극의 일본 소유 연구기지인 쇼와 기지와 돔 후지 기지 등 극지 네 곳에서 30년 이상 수집한 기후 데이터에 ‘데이터 음향화 프로그램’으로 소리를 할당했다. 기후 데이터는 매월 측정된 단파와 장파 복사, 강수량, 표면 온도, 구름 두께 등이다.

연구팀은 데이터를 소리로 변환하는 것을 넘어 예술을 도입했다. 데이터 음향화 작업 후 이를 현악 4중주 음악으로 바꾸기 위해 바이올린 2대, 비올라 1대, 첼로 1대가 연주하는 음악적 구성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했다. 피치카토, 스타카토 등 음악 연주 기술을 도입하고 음높이 조율, 특정한 소리의 의도적 제거, 리듬 도입 등 인간의 예술적 손길을 더했다.

또 긴장감이 고조됐다가 해소되는 형식으로 구성해 듣는 사람의 몰입감을 높였다. 작곡가가 관여해 박자와 화성 진행에서 다양한 변주를 추가한 것이다. 과학을 위해 측정한 데이터를 소리로 변환한 뒤 예술적 개입을 시도한 결과물을 연구 논문에 담아 발표했다.

나가이 교수는 “음악은 단순한 소리와 달리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며 “긴장감을 조성하고 역동성을 더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음악화 과정에 작곡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이 같은 연구를 시도한 이유는 과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 앞서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작업이 과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극적인 변화를 맞고 있는 극지 기후 데이터로 감정적 울림을 증폭시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유발할 수 있다.

나가이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토대로 과학자들만 데이터를 다루는 시대에서 예술가들도 자유롭게 데이터를 활용해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시대로 이행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데이터를 음악화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KAIST는 지난해 9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기후변화를 겪은 미래를 반영한 비발디 협주곡 사계를 재창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50년 대전의 기후 예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재창작한 것이다.

KAIST 연구진은 숫자로 이뤄진 기후변화 데이터를 입력하면 이를 새로운 악보로 변환해 주는 알고리즘을 직접 개발해 편곡에 적용했다. 생성형 AI인 챗GPT-4가 재해석한 소네트(짧은 정형시)의 정서도 음악적 효과를 가중하는 데 활용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재창작된 ‘사계 2050-대전’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불규칙하며 혼란스러운 분위기의 곡으로 완성됐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데이터 음향화 프로그램#지구환경과학#첨단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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