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붓거나 통증 있으면 하지정맥류?… 초음파로 정밀 진단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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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정맥류
증상만으로 비싼 수술 권유하기도… 하지정맥 판막 역류 여부가 관건

하지정맥류는 진행 정도에 따라 푸른 힘줄이 보이지만 겉으로 검붉은 혈관이 뱀처럼 굵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정맥류는 진행 정도에 따라 푸른 힘줄이 보이지만 겉으로 검붉은 혈관이 뱀처럼 굵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정맥류 환자가 늘면서 일부 병원에서 증상이 비슷한 근육통을 하지정맥류로 오진하고 비싼 수술을 유도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잠복성 하지정맥류’ 등의 이름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가 없어도 하지정맥류일 수 있다고 환자를 현혹하는 병원도 있다.
증상 비슷하다고 하지정맥류 수술 권유하기도
#. 직장인 박모 씨(32·여)는 다리 통증이 심해지고 아침·저녁으로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박 씨는 자신의 증상이 인터넷에서 본 하지정맥류와 비슷한 것 같아 전문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중증 하지정맥류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비는 비급여 항목으로 한쪽 다리에 300여만 원. 박 씨는 당장 큰 돈이 들어가는 데다 수술에 대한 부담으로 망설였다. 그러나 놔두면 통증이 더 심해지고 하지 조직이 괴사될 수도 있다는 말에 확인 차 다른 병원을 찾았다. 다시 초음파검사를 받은 결과 혈관은 정상이었고 과체중에 이직 후 장거리 출퇴근, 스트레스, 운동 부족 등이 겹쳐 관절염이 심해진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박 씨는 병원 권고에 따라 관절염 치료에 집중했고 이후 증상이 호전됐다.

박 씨가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은 곳은 서울 강남구 중심부에 지점을 두 곳이나 가지고 있는 전문병원이다. 홈페이지 안내와 인터넷 평판을 보고 찾아갔지만 박 씨의 기대와 달리 관절염을 중증 하지정맥류로 오진한 것이다.

강동구의 유명 하지정맥류 전문 의원도 단순 다리 통증을 중증 하지정맥류로 자주 오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술 당일 퇴원할 수 있는 간단한 혈관직접폐쇄법(베나실) 수술로 환자를 유인한다.

문제는 이것이 의료진의 실수에 따른 오진이 아니라 의도적인 ‘환자 기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정맥류를 진료하는 한 병원의 원장은 “하지정맥류 수술을 권유받았다는 환자에게 초음파검사를 해보면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하기는커녕 하지정맥류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초음파 검사로 역류있어야 하지정맥류 진단
하지정맥류는 다리에 검붉은 혈관이 뱀처럼 굵게 튀어나오는 질환으로 보통 종아리 뒤쪽이나 다리 안쪽에 생긴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혈액이 다리에 고여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듯 다리가 무겁고 쉽게 피로해진다. 심할 경우 다리와 발에 난치성 피부염, 혈전성 정맥염, 궤양 등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하지정맥류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정맥류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4년 15만3000명에서 2018년 18만8000명으로 연평균 5.4% 증가했다.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2.2배 많았고 40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해 50대(2018년 기준 5만2360명, 27.9%)에 가장 많이 나타났다.

다리 쪽 정맥은 중력 반대 방향인 심장 쪽으로 혈액을 운반한다. 하지 근육은 물 펌프처럼 수축하면서 혈액을 위로 올려 보낸다. 위로 올라간 피가 중력의 영향으로 다시 역류하지 않도록 하지정맥 속에는 얇은 판막이 존재한다. 나이가 들면 이 판막이 약해지고 정맥의 탄력이 감소해 혈액이 역류한다. 이럴 경우 정맥 내부의 압력이 올라가면서 정맥이 확장돼 정맥류가 생길 수 있다.

수술이 필요한 하지정맥류 진단은 명확하다. 김승진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의사회 회장은 “대한정맥학회는 초음파혈류검사로 하지정맥 판막에 역류현상이 0.5초 이상 나타나는 경우를 진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간혹 굵은 핏줄 등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더라도 검사 결과 하지의 역류가 있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그 외에 아프고 저리고 무겁다면 ‘기타 정맥의 이상’으로 분류된다.

국내 최초로 하지정맥류 치료법을 도입한 심영기 연세에스의원 원장은 “하지정맥류 환자는 판막이 찢어진 상태기 때문에 역류가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다”며 “논란의 여지없이 초음파 검사로 역류가 있으면 양성, 없으면 음성”이라고 말했다.

피의 역류 여부를 검사하는 방법은 초음파가 유일하다. 하지정맥류가 의심되는 부위에 초음파 프로브(probe)를 피부에 대고 역류가 있는지 소리를 녹음한다. 이때 검사자는 소음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오진 의심될 땐 검사결과지 요청해야
최근 하지정맥류 유병률이 높아지는 이유로 서구화된 식습관과 생활습관 변화가 꼽힌다. 고열량 고지방 음식을 자주 섭취하면 혈관이 끈적해지고 혈전성 정맥염이 동반돼 하지정맥 순환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방바닥에서 먹고 자는 생활문화가 서양식 좌식문화로 바뀌어 하지 근력이 약해진 것도 정맥류와 관련이 있다.

초음파검사와 혈관검사를 이용한 조기검진도 유병률 상승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장시간 서 있는 업무환경, 운동부족, 과체중, 피임약 및 여성호르몬제 장기 복용, 하이힐 착용 등도 정맥류 발병과 연관된다. 유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전체 환자의 20∼50%가 가족력을 갖고 있다.

하지정맥류 환자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4년 415억 원에서 2018년 512억 원으로 97억 원이 늘어 연평균 5.8% 증가했다. 입원진료비는 2014년 275억 원에서 2018년 291억 원으로 연평균 1.7% 증가했고 외래는 같은 기간 109억 원에서 163억 원으로 연평균 11.2% 증가했다.

좌식생활, 야채를 많이 먹는 식습관 덕에 우리나라의 하지정맥류 환자는 치질 환자 수의 10분의 1밖에 안된다. 서구화된 생활습관을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환자 증가는 가파른 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단순히 다리 부기나 통증만으로 하지정맥류를 진단해서는 안 된다. 하지정맥류 증상이라고 알려진 다리 부종과 근육통은 단순 근육통, 무릎 관절통, 좌골 신경통, 발목인대 손상,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증) 등 다른 질환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오히려 하지정맥류는 서서히 진행돼 환자가 통증에 적응해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굵은 핏줄이 돌출되지 않았음에도 하지정맥류로 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을 받았다면 반드시 다른 병원에도 들러 추가로 진단을 받아 보는 게 불필요한 수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초음파 검사 결과지를 받아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헬스동아#의료#하지정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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