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둘둘 말고 다니다 필요할 때 쫙∼, 꿈이 아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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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시대 열린다

둘둘 감고 있다가 필요할 때 펼쳐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맨위위쪽). 팔찌처럼 손목에 찰 수 있을 만큼 잘 휘어지는 디스플레이가 개발된 배경에는 가볍고 유연한 플라스틱에 전기가 흐르는 성질까지 더한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기술이 있다. 플렉스인에이블 제공·케임브리지=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둘둘 감고 있다가 필요할 때 펼쳐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맨위위쪽). 팔찌처럼 손목에 찰 수 있을 만큼 잘 휘어지는 디스플레이가 개발된 배경에는 가볍고 유연한 플라스틱에 전기가 흐르는 성질까지 더한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기술이 있다. 플렉스인에이블 제공·케임브리지=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이 팔찌, 멋지지 않나요. 손목 모양대로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쓴 덕분에 기존보다 화면을 최대 10배 넓게 쓸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 휘어지는 전자기기 개발 업체인 플렉스인에이블 사무실에서 만난 폴 케인 전략팀장은 전자제품의 미래를 눈앞에 보여줬다. 플라스틱 액정표시장치(LCD)로 만든 팔찌형 디스플레이는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화제가 됐던 그 제품이다.

둘둘 말고 다니다 필요할 때 펼쳐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 곡면에도 설치가 가능한 지문 인식기 등도 플렉스인에이블의 대표 제품이다. 가볍고 유연하며 만들기 쉬운 플라스틱에 전기가 흐르는 성질까지 더한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기술이 적용된 덕분이다.

○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상품화에 각국 사활

팔찌형 디스플레이에 적용된 플라스틱 LCD는 유리 대신 플라스틱 기판 위에 유기 트랜지스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 LCD보다 10배나 얇고 가볍다. 깨지지 않고 무엇보다 인쇄 방식으로 만들 수 있어 가격이 저렴하다.

다만 아직 시제품 수준이다. 터치스크린도 아니어서 세부 기능을 선택하려면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케인 팀장은 “다른 제조업체와 협력해서 18개월 내에 완성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시장의 성장 분위기는 뜨겁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인 IDTechEx는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소재 및 기기 시장 규모가 내년에 5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케인 팀장은 “일찌감치 이 분야 연구에 전념했던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가능성을 보고 2000년 설립한 대학창업기업 ‘플라스틱 로직’이 플렉스인에이블의 모기업”이라며 “2008년 독일 드레스덴에 대량 생산 공장을 지은 뒤 기술 개발과 특허를 전담하기 위해 독립해 나왔다”고 설명했다.

영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꼽히는 임페리얼칼리지(ICL)도 2000년 유기반도체 연구를 시작해 2009년 융합센터인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센터(CPE·Center for Plastic Electronics)’를 설립했다. 물리학, 화학 등 기초과학이 강세인 만큼 재료를 개발하는 기초 연구부터 다양한 응용까지 이론과 실험적 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있다.

제임스 듀런트 임페리얼칼리지 CPE 센터장은 “2013년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 기술의 실증 단계에 착수한 일본이 올해 첫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라며 “CPE가 전 세계 30여 개 기관과 협력하고 있지만 상품화를 위해서는 삼성과 LG 등이 있는 한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승현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오른쪽)과 제임스 스털링 영국 임페리얼칼리지(ICL) 대내총장이 17일 런던에서 업무협약을 맺고 협약서를 나누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제공
문승현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오른쪽)과 제임스 스털링 영국 임페리얼칼리지(ICL) 대내총장이 17일 런던에서 업무협약을 맺고 협약서를 나누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제공
○ GIST-임페리얼칼리지, 시장 선점 위해 협력

듀런트 센터장이 한국을 콕 집어 말한 데는 국내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의 연구 수준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배경도 작용했다.

이광희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효율 6.5%의 플라스틱 태양전지를 개발해 2007년 ‘사이언스’에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1∼2%에 불과하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으로, 최근에는 효율을 12%까지 끌어올리고 프린터로 인쇄하는 공정 기술도 개발을 마쳤다. GIST 연구진의 이런 실용적인 성과는 기초 연구 중심인 임페리얼칼리지에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17일 두 기관은 런던에서 업무협약을 맺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임페리얼칼리지를 방문한 일도 이번 협약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박 대통령의 방문 이후 지난해부터 GIST는 한영 교류협력에 참여했고, 이때 임페리얼칼리지로부터 국제협력 연구개발(R&D) 센터 구축을 제안받았다.

문승현 GIST 총장은 “실리콘 반도체를 기반으로 발전한 국내 전자산업이 성장 한계에 다다른 만큼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가 이를 대체할 차세대 주자가 될 수 있다”며 “GIST와 임페리얼칼리지의 협력으로 관련 연구에 가속도가 붙은 만큼 상품화를 위한 실증센터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런던·케임브리지=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플라스틱 일렉트로닉스#광주과학기술원#문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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