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연가 복지부장관 후보자 금연해야 정책 힘실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세계 담배정책 경향과 한국’ 전문가 좌담회

‘전 세계 담배 정책의 경향과 한국’ 좌담회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는 모습. 왼쪽부터 임종규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 슈프레다 아둘리아논 태국 건강증진재단 이사장, 스리나스 레디 인도 건강증진재단 이사장, 사이먼 채프먼 호주 시드니대 교수, 하이크 니코고시안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사무국장, 문창진 한국건강증진재단 이사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전 세계 담배 정책의 경향과 한국’ 좌담회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는 모습. 왼쪽부터 임종규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 슈프레다 아둘리아논 태국 건강증진재단 이사장, 스리나스 레디 인도 건강증진재단 이사장, 사이먼 채프먼 호주 시드니대 교수, 하이크 니코고시안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사무국장, 문창진 한국건강증진재단 이사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금연 의지를 보이면 국민의 귀감이 되지 않을까요.”

전 세계 담배 정책의 권위자들은 이렇게 한목소리로 말했다. 애연가로 알려진 문형표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보건정책 수장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금연이 필요하다고 했다. 10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 세계 담배 정책의 경향과 한국’ 좌담회에서 나온 요청이다. 하이크 니코고시안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사무국장(전 아르메니아 복지부 장관), 슈프레다 아둘리아논 태국 건강증진재단 이사장, 사이먼 채프먼 호주 시드니대 교수, 스리나스 레디 인도 건강증진재단 이사장, 문창진 한국건강증진재단 이사장, 임종규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이 참석했다.

○ 보건 정책 수장은 금연해야

전 세계 담배 정책의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는 니코고시안 사무국장은 “금연이 복지부 장관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담배를 끊는 시도라도 하지 않는 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둘리아논 이사장은 “한국은 청소년 흡연율이 문제이므로 문 후보자가 금연을 시도하면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며 “최소한 언론이나 대중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노출되지 않는 게 좋다”고 공감했다.

담배 정책의 권위자인 채프먼 교수는 “흡연자의 90%는 담배를 피운 세월을 후회한다는 연구가 있다. 문 후보자에게는 이번이 기회가 아닐까”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재임 중 담배를 끊었다”고 귀띔했다.

임종규 건강정책국장도 최근 업무보고 과정에서 문 후보자에게 금연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 담배 정책은 C학점

참석자들은 한국의 담배 규제 정책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한국이 지난해 제5차 WHO FCTC 당사국 총회를 개최했고 내년 러시아 모스크바 제6차 총회 의장국을 맡는 등 국제 협력 강화를 위한 노력에는 칭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의 2004년 기준 말버러 담배 1갑의 가격이 2500원으로 노르웨이(1만6600원), 영국(1만2000원), 미국(6900원)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싼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또 전 세계 60개국이 담뱃갑에 넣고 있는 흡연 경고 그림을 여전히 채택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레디 이사장은 “한국은 가장 빠른 속도로 흡연율을 줄이고 있지만 49.3%는 아직 높다”며 “담배 규제 수준은 아시아에서도 중간 수준이다”고 평가했다.

아둘리아논 이사장은 한국의 담뱃세 수입이 국민 건강증진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2011년 이후 담뱃세가 오르지 않은 점은 문제다. 태국의 1억2000만 달러보다 담뱃세가 건강 사업에 투입되는 비율이 적다”며 확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내 대표로 참석한 문창진 이사장은 “해외 전문가들이 한국을 너무 후하게 평가한 것 같다. 한국은 경제력에 비해 흡연율이 아직 높다”며 “총회 의장국 지휘에 걸맞은 국제 기준을 따라가려면 더 강력한 담배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담배와의 전쟁은 전 지구적 차원

전문가들은 ‘담배와의 전쟁이 전 지구적 싸움’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WHO가 보건 분야 최초의 국제협약인 FCTC를 2003년 채택하고 10년 동안 당사국을 전 세계 90%까지 늘렸지만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건강 증진 단체들이 담배 규제를 위한 공조를 강화할수록 글로벌 담배 기업들은 로비와 방해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니코고시안 사무국장은 “글로벌 담배 회사들이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근거로 국제 담배 규제 협력을 무력화하고 있다”며 “2025년 전 세계 흡연 인구 5%를 달성하려면 국제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자 담배, 무연 담배, 씹는 담배 등 신종 담배와의 전쟁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채프먼 교수는 “신종 담배의 잠재적 위험은 담배와 똑같지만 금연 효과가 있는 것처럼 홍보되기도 한다”며 “신종 담배를 막지 못하면 25년의 국제 담배 규제 공조가 물거품이 된다. 3, 4년이 지나면 더 막기 힘들 정도로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신종 담배 시장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신종 담배 수입은 등록제여서 사실상 규제가 힘든 상황이다. 임종규 국장은 “기획재정부에 신종 담배의 위험성을 알리고 규제를 요청하고 있다”며 “특히 무연 담배에서는 발암물질이 나오고 씹는 담배는 구강암 위험성이 커서 판매를 허가하지 않는 국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