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누리칼럼]이인호/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

  • 입력 2005년 12월 20일 16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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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통 뉴스가 줄기세포 파동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황우석 교수를 참 대단한 인물로, 한국을 빛낼 인물로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논문 조작 사건에 휘말리고 원천 기술까지 의심을 받는 상황에 오게 되어 너무 아쉽다.

MBC PD 수첩에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다. 줄기세포 연구에 중추적 역할을 해 온 황우석 교수, 노성일 이사장, 김선종 연구원의 이야기가 서로 앞뒤가 안맞는다고 언론에서 연일 지적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음모론도 들먹이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황우석 교수 사건을 보고 있으면 자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 생각이 난다.

라쇼몽의 내용을 잠시 설명하자면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증언이 다 다르다. 숲속에서 사무라이 타케히로가 말을 타고 자신의 아내 마사코와 함께 숲속 길을 지나가고 있다.

그늘 속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 타조마루는 마사코의 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속임수를 써서 타케히로를 포박하고, 타조마루는 마사코를 겁탈한다. 오후에 그 숲속에 들어선 나무꾼은 사무라이 타케히로의 가슴에 칼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타조마루는 체포되고 행방이 묘연했던 마사코도 불려와 관청에서 심문이 벌어진다.

겉보기에는 잘잘못이 명백해 보이는 이 사건이 당사자들의 진술을 통해 다양한 진실을 들려준다는 점이 참 재미있다. 이로 인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먼저 산적 타조마루는 자신이 속임수를 썼고, 마사코를 겁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무라이와는 정당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사코의 진술은 다르다. 자신이 겁탈당한 후, 남편을 보니 싸늘하기 그지 없는 눈초리였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을 경멸하는 눈초리에 제정신이 나간 그녀는 혼란속에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무당의 힘을 빌어 강신한 죽은 타케히로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지만, 오히려 산적 타조마루가 자신을 옹호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결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엇갈리는 진술 속에는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 있다. 좀처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이때, 실은 그 현장을 목격한 이가 있었는데 바로 나무꾼이다. 그는 마사코가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서 결투를 붙여놓고 도망쳤고, 남은 두 남자는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개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자신에게 좀더 유리하도록 사실을 포장해서 말하는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있을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한 가지 사건을 두고 각각의 개인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증언을 하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진실이라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연출론을 밝혔다고 한다.

과연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 김선종 연구원 그들은 어떤 진실 속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들의 사이는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이제 우리는 사실을 알고 싶다. 진실이라고 하는 보자기에 싸여 있는 내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고 싶다. 라쇼몽에서의 나무꾼처럼 그 상황을 본 사람은 없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을까? 그 사람도 자신의 어떤 위치나 이익 등에 휘둘려 사실이 은폐된다면 이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황우석 교수가 거짓말을 한 것이든, 노성일 이사장이 거짓말을 한 것이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마음이 울적하고 괴롭다. 그래도 그나마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황우석 교수의 말이 사실이길 기대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 노성일 이사장의 말이 진실이라면 너무 암울하다.

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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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원에서도 역시 한방부인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처음 실시된 한방 전문의 제도를 통해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이 배출한 한방부인과 전문의 1기이다. 여성이 건강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나아가 사회생활이 즐겁고 나라가 편안하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아름다운 여성한의원에서 여성들의 ‘건강지킴이’로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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