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블로그와 주류 언론

  • 입력 2005년 2월 16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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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이 누리사랑방(블로그·blog)에 올린 글 때문에 세계적 방송사 CNN의 뉴스본부장이 사임하게 되자 미국 언론들이 화들짝 놀랐다. 빌 게이츠나 오사마 빈 라덴 같은 ‘거대 개인’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가 왔다고 한 게 엊그젠데 이제 힘없는 개인도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사를 기존 언론이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초미니 개인 언론인 블로그의 출현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조류인지도 모른다.

이번 CNN 뉴스본부장의 사임은 언론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당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는데도(1월 다보스포럼에서의 이라크 주둔 미군 비난 발언) 블로거들의 공격에 거대 언론사가 손을 들었다는 점에서 미국 언론들은 착잡해 하고 있다. 5개월 전 CBS의 간판 앵커 댄 래더가 미확인 보도로 블로거들의 공격을 받고 물러날 때는 그의 잘못이 컸기 때문에 사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인터넷 혁명이 몰고 온 블로그는 이제 주류 언론을 혼쭐 낼 정도로 성장했다. 인터넷의 가장 큰 폐단인 익명성을 극복하면서 사회적 영향력도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주류 언론이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하는 이슈를 제기하기도 하고 주류 언론을 감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하지만 블로그의 힘이 커질수록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리라는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블로그는 무엇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돼 대량으로 유통될 수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잘못된 정보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을 겨냥하면 이번 CNN 뉴스본부장의 사임처럼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언론은 뉴스를 신속하게 보도하면서 인권 및 취재원 보호, 공공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나름의 윤리를 갖고 있다. 이제 시작된 블로그는 아직 이런 윤리체계를 마련하지 못했다. 개인 언론이라는 한계 때문에 통합된 의견을 구하기도 어렵고 자체로는 종합적인 언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따라서 블로그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해도 주류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여전하다. 블로그가 제기한 문제는 주류 언론의 확인과 보도를 거치면서 신뢰도가 높아진다. 사회적 어젠다를 만드는 기능도 아직은 주류 언론의 몫이다.

예컨대 포위된 바그다드의 실상이나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를 세상에 알리는 데도 블로거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이것을 받아서 이슈화한 것은 주류 언론이었다.

블로그의 목표가 기존 주류 언론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블로그는 주류 언론과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독자들이 신문을 사보는 이유는 뉴스가치를 따질 때 주류 언론이 좀 더 성숙한 판단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적 열정과 프로페셔널 언론을 구분하는 것도 공정성과 균형 감각일 것이다.

블로거들이 힘을 합해 주류 언론을 공격한 CNN 뉴스본부장 사임 파동은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언론의 책임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김상영 국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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