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뺑소니 사고' 분노 봇물

  • 입력 2004년 12월 2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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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사람이 뺑소니 차량에 잇따라 치여 숨지는 동안 주변 차량 운전자들은 구조는 커녕 신고도 안하고 있었다니, 세상이 이다지도 각박하고 비정해서야….”

새벽에 술취해 도로를 건너던 40대 남자가 뺑소니차에 치여 쓰러진 뒤 주변 운전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10여 분간 방치돼 있다가 뒤따르던 서너 대의 차량에 연쇄적으로 치여 처참하게 숨졌다는 2일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 누리꾼(네티즌)들의 논란이 뜨겁다.

▽사건 개요▽

2일 새벽 오전 4시 30분경 부산시 남구 문현동 문현고가 아래 어두운 도로에서 술에 취해 길을 건너던 40대 남자가 뺑소니 차량에 치여 쓰러졌다. 사고차량은 그대로 도망쳤고 주변을 달리던 20여대의 차량도 도로위에 쓰러진 피해자를 피해 지나쳤다.

곧이어 이를 모르고 정지선에 서 있다 출발한 차량 서너대가 피해자를 잇따라 덮쳤다. 하지만 이 운전자들도 그대로 차를 몰고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10-20m 가량 튕겨져 나가 2차로에서 나뒹굴었다. 결국 시신은 4시 40분께 마지막으로 친 2.5t 화물차 운전사 김모(52·부산 남구 용당동)씨의 신고로 겨우 수습될 수 있었다.

▽목격자인 택시기사의 사정 ▽

보도가 나가자, 누리꾼들은 “충격적”이라며 각 포털 사이트에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우선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사고를 목격했던 택시기사.

최초 보도는 “사고 현장을 목격한 한 택시기사가 ‘피해자가 여러차례 차에 치이면서 20여m가량 튕겨져 나갔다’며 ‘많은 차량이 지나갔지만 구조하려고 나서는 운전자는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누리꾼들은 “택시기사는 피해자가 그 지경이 되도록 구경만 하고 있었냐”며 성토하기 시작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그 택시기사가 더 나쁘다”며 “원래 택시기사들은 비양심적”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고 조사를 맡은 부산지방경찰청 남부서 권모 경사는 “택시기사 이모씨는 반대편 차선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마지막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 했다”면서 “피해자가 잇따라 차에 치이는 순간을 목격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즉, “여러 차례 치인 것 같다”는 진술은 이씨가 본 사건 발생 즈음 피해자가 쓰러져 있던 반대편 2차선에서 오는 차량 수가 서너대였기에 나온 것.

정확히 몇 대가 피해자를 치고 도주했지는 부검 결과가 나와야만 알 수 있다.

▽트럭운전사의 처벌은?▽

누리꾼들은 트럭운전사의 처벌 수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몇몇 누리꾼들은 “마지막으로 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질 것”이라며 “제일 양심적인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트럭운전사가 최종 사망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담당 경찰관은 “어느 시점에 피해자가 사망했는지가 관건”이라며 “만약 사체를 들이받았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사망한 상태가 아니라면, 주의 의무 위반으로 과실을 따지게 된다. 그래도 밤이고, 고가다리 밑이니까 정상 참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어 “뺑소니 차량 운전자라도 사망 시점은 중요하다. 만약 피해자가 살아있었는데도 도주했다면, 뺑소니 차량은 전부 똑같은 처벌을 받는다”면서도 “그러나 피해자의 신체가 튕겨져 날아오는 것을 들이받았다면 ‘불가항력’이기 때문에 무혐의 처리된다”고 덧붙였다.

▽경찰 때문에 신고하면 안돼?▽

누리꾼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경찰에 돌리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경찰에서 오라가라 번거롭게 하고 강압적인 수사를 하기 때문에 신고를 꺼리게 된다”면서 “뺑소니 사고를 신고한 사람이 경찰에 의해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산경찰청 교통과 문봉철 경사는 “뺑소니사고 목격자가 신고하는 경우 진술을 위해 수차례 경찰서에 와서 진술을 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물증이나 정황증거없이 경찰 임의대로 목격자를 가해자로 몰 수는 없다. 재판에서 무혐의 되면 그 책임은 경찰 몫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 경사는 이어 “요즘은 시민의식이 높아져 신고하는 시민들도 많아졌다”면서 “게다가 뺑소니를 신고하면,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포상금을 받게 된다”고 귀뜸했다.

한편 경찰은 3일께 국립과학수사본부에 사체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영어학원 강사로 알려진 피해자는 독신으로 아직 유가족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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