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에이즈 '그들의 병' 아닌 '우리의 병'

  • 입력 2001년 11월 27일 18시 40분


《에이즈가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국내에서는 85년 첫 감염자가 확인된 이후 올 9월 현재 정부가 집계한 감염자 수만 1500여명이 넘었다. HIV가 혈액에 직접 침입하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감염자가 된다. 또 정액과 질분비물 등을 통해 전파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침과 소변 눈물 땀 등을 통해서도 감염된다고 오해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경우 HIV의 농도가 매우 낮기때문에 감염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동성연애자만 에이즈에 걸리는 줄 알았습니다. 나같은 사람은 걸리지 않을 걸로 생각해왔죠. 그러나 이제 누구든지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나, ‘매직(Magic)’ 존슨조차도….”

91년 11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프로농구 LA레이커스팀의 스타 매직 존슨은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실을 털어놓았다. 미국 스포츠계는 발칵 뒤집혔고 그의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10년. 42세가 된 존슨은 여전히 ‘왕성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미국 드림팀의 일원으로 참가해 우승을 이끌었고, 자신의 이름을 딴 농구팀을 창단해 전세계를 누비기도 했다.

수십여개의 극장과 커피체인점을 사들이고 음반사와 스포츠용품사에 투자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는 현재 에이즈 예방법에 대해 열성적으로 강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감염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에이즈가 ‘특정인의 병’이 아닌 ‘우리의 병’이 돼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감염 경로〓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김준명 교수팀이 부산대 의대와 함께 85년부터 지난해까지 HIV 감염자 176명을 대상으로 감염경로를 조사한 결과 ‘이성간의 성접촉’으로 감염된 사람이 92명(52.3%)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동성간의 성접촉’(42명) ‘미확인’(36명) ‘수혈 및 혈액제제’(4명) 등이었고, 그동안 보고된 적이 없던 ‘마약 주사로 인한 감염’(2명)도 공식 확인됐다.

국립보건원이 올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성간의 성접촉으로 HIV에 감염된 경우는 전체 감염자(1515명) 중 69.3%인 1050명였다. 상처가 생기지 않는 정상적인 성행위의 경우 한 번 접촉시 감염될 확률은 1000분의 1∼100분의 1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밖에 밝혀진 감염 경로에는 부모로부터 감염되는 ‘수직 감염’이 있다. 임신 중이나 분만 과정, 모유 등을 통해서 감염되는데 국내에서도 2명의 신생아가 이로 인해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즈 증세〓HIV에 감염된 직후를 ‘급성감염기’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특별한 증세를 느끼지 못한다. 사람에 따라 감기 설사 복통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아도 1∼6주면 이같은 증세가 사라지기 때문에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후 8∼10년간 ‘무증상 잠복기’가 이어진다. 외부에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몸 속에서는 바이러스가 계속 활동해 면역 체계가 점차 무너지는 시기다. 에이즈의 경우 발병한 상태인 환자보다 감염자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남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잠복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에이즈 이행단계’로 접어든다. 두통 체중감소 오한 설사 등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면역력이 떨어져 구강백반 부스럼 등 각종 피부병이 생긴다. 말기인 ‘에이즈 단계’에서는 폐렴 결핵 치매 등이 나타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예방만이 최선〓세계 각국에서 치료 및 예방백신의 임상시험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은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다. 세계에이즈퇴치계획(UNAIDS)과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등은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실제로 우간다는 대대적인 콘돔 사용 캠페인을 벌여 감염자 증가 추세를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마약에 대한 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국내에서도 마약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이로 인한 HIV 감염자도 공식 확인됐다. 마약 복용자는 환각 상태에서 주사기를 돌려 쓰다가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HIV에 감염되는 것이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에이즈 바이러스 침투과정

◆ 에이즈 바이러스

에이즈 바이러스(HIV)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20년간 ‘에이즈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치료법 등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HIV는 이를 비웃 듯 사람들의 몸 속을 옮겨 다니는 등 ‘전장(戰場)’을 넓혀가고 있다. 인체에 침입해 면역 시스템을 서서히 그러나 철저하게 파괴하는 HIV를 알아보자.

▽HIV의 정체〓HIV는 증식 과정이 보통 바이러스와 다르다. 보통 바이러스는 핵 속에 DNA를 갖고 있고, 이 DNA가 RNA를 생산하는 과정을 거치며 증식한다. 그러나 HIV는 DNA 대신 변형된 RNA를 갖고 있다. 증식하기 전에 이 RNA가 DNA로 바뀐 뒤 다시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RNA를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보통 바이러스 치료제는 효과가 없다. 또 HIV는 증식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심해 예방백신 개발도 어렵다.

▽HIV의 공격〓HIV의 공격 목표는 몸 속의 면역세포. 이 가운데 다른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CD4림프구와 바이러스를 직접 잡아먹는 대식세포에 집중돼 있다.

HIV는 CD4림프구를 곧바로 파괴하기도 하지만 이 세포 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 갑자기 증식하는 경우도 있다. 또 감염된 대식세포는 죽지 않고 몸 속을 떠돌며 HIV를 퍼뜨린다.

▽치료법〓HIV를 박멸할 수 있는 치료제는 아직까지 없다. 다만 과학자들은 HIV가 증식할 때 △RNA가 DNA로 바뀌는 과정 △DNA가 분자량이 큰 단백질을 분해해 실제 활동하는 단백질로 바꾸는 과정 등을 각각 방해하는 치료제를 개발한 상태다.

또 한 가지 치료제만으로 돌연변이가 잦은 HIV를 이기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세 가지 치료제를 동시에 투여하는 ‘칵테일 요법’이 많이 사용된다.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바이러스 수가 급격히 감소한다. 그러나 약을 중단하면 HIV는 곧 활동을 재개한다.

▽감염자 생활〓전문가들은 “감염되더라도 정기적으로 건강진단과 치료를 받으면 오래 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치료제가 나오고 있고 완치법 개발도 가능한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적절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로 체력을 확보하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염자는 혈액 정액 질분비물 모유 등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가족들은 면도기 칫솔 손톱깎이 귀걸이 등을 따로 사용해야 추가 감염을 피할 수 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모기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닌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기 등 피를 빨아먹는 곤충이 사람에게 에이즈 바이러스(HIV)를 감염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모기는 사람을 물 때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옮기지 않는다. 또 자신의 피를 사람의 피부 속으로 집어넣지도 않는다. 대신 잘 물 수 있도록 침을 윤활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말라리아 황열 등 전염병의 전파경로가 되기도 한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는 “모기가 에이즈 환자의 피를 빨아먹었다 해도 양이 매우 적고, HIV가 모기 체내에서는 증식할 수 없기 때문에 전파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논란은 모기 서식지가 많은 미국 플로리다의 작은 마을에서 에이즈가 집단 발병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조사결과 마을 주민 대부분이 동성연애자로 밝혀졌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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