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이 클수록 오래 산다…쓸모없는 DNA기능 밝혀져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33분


실제로는 타당하거나 참인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모순되거나 애매한 것처럼 보이는 진술 또는 공식을 우리는 패러독스라고 한다. 게놈연구에서도 패러독스가 있다. C 패러독스가 그것으로 전체 게놈의 양(C 값)이 진화 정도나 유전자 수에 정비례하지 않는 사실을 일컫는 말이다.

실험용 생물들의 게놈 염기서열은 효모가 1996년, 진핵생물로는 최초로 선충이 1998년 밝혀졌으며, 올해 3월에는 초파리가 완료됐다. 이들과 인간의 게놈을 비교 분석한 결과 고등생물일수록 전체 게놈 중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인간은 효모에 비해 전체 게놈의 DNA 양은 250배나 되지만 이중 의미가 있는 DNA인 유전자 개수는 16배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게놈 단계에서 일어난 진화과정을 추적했다. 그 결과 생물이 진화과정에서 유전자를 늘리기 위해서 자신의 게놈에서 같은 유전자를 반복적으로 복제해 온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복제된 유전자는 처음에는 같은 유전자였지만, 이후 돌연변이 등을 통해 조금씩 달라져 나중에는 아예 유전자의 기능을 잃고 쓸모 없는 DNA가 되기도 했다.

게놈프로젝트의 결과, 효모게놈으로부터의 6241개 유전자 중 1858개가 복제된 유전자로 밝혀졌으며, 선충게놈의 경우 1만8424개 유전자 중 8971개, 초파리게놈의 경우 1만3601개 유전자 중 5536개가 복제된 유전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유전자가 진화과정에서 복제를 통해 늘어났으나, 이중 상당수는 쓸모 없는 DNA로 전락하고 만 셈이다.

그런데 최근 ‘쓸모 없는’ DNA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팀은 ‘트렌즈 인 지네틱스’ 최신호에서 새의 경우 게놈의 크기가 클수록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를 이끈 생물학자인 팻트 모나간과 닐 매칼프 교수는 조그마한 굴뚝새로부터 커다란 콘돌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른 28개과 67종의 새들의 수명과 게놈의 양을 분석한 결과, 게놈의 양이 클수록 수명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새들의 유전자는 거의 동일하다고 할 때 게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쓸모 없는 DNA의 숨겨진 기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온 셈이다.

<이영완 과학동아기자> 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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