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잦아진 싸움 "우리가 왜…"

  • 입력 2000년 8월 7일 19시 19분


“의약분업을 둘러싼 사소한 말다툼이 부부싸움으로까지 번져 ‘우리까지 왜 이러지’하며 머쓱해한 적도 많았죠. 문제의 본질과 서로의 입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조성준(46·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조신경정신과 원장) 문주경씨(42·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로마약국 약사)부부는 지난 몇 달간 새삼 자신들이 ‘얄궂은’ 운명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의사 남편과 이화여대 약대 출신인 약사 아내. 의약분업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이들 부부의 마음 고생은 남다르다.

약물 오남용 방지와 국민건강 보호라는 취지로 시행된 의약분업과 관련해 빚어진 일련의 사태가 의사와 약사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진 때문. ‘의사 남편’과 ‘약사 아내’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 눈에 ‘견원지간’처럼 비쳐진 양측의 힘 겨루기를 지켜볼 때가 가장 안타깝다. 또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환자들이 속도 모르고 “의약분업 이후 부부 중 누가 더 돈을 많이 버느냐” “누가 더 나쁘냐”는 질문을 해올 때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우리는 다투지 말자’며 가급적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지요. TV에 관련 내용이 나올 때면 아예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하고요.”(남편 조씨)“부부지만 전문직업인으로서 각자의 입장을 강조하다 말다툼을 벌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로에게 조언하는 기회를 많이 가져요.”(부인 문씨)

이것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의사’와 ‘약사’의 숨은 고충을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의약분업의 근본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의보수가의 현실화 등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요.”(문씨)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사〓피해자’, ‘약사〓수혜자’라는 이분법적 판단은 잘못된 것 같아요. 국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국민과 정부를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말이죠.”(조씨)

한편 의약분업 실시와 함께 이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편 조씨의 수입이 크게 줄면서 문씨가 8년 간의 전업주부 생활을 접고 3월부터 약국 문을 다시 연 것. 시설을 확충하고 약을 구비하느라 문씨는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자상하게 신경 써주는 남편의 도움이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남편의 의원과 부인의 약국이 멀리 떨어져 있어 남편의 처방전을 부인의 약국에 갖고 가는 환자는 거의 없다.

조씨 부부는 “의사와 약사는 대립하지 말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의료인으로 동반자적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 부부가 내린 ‘결론’”이라고 강조한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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