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醫保' 조기도입]의료혜택 부익부 빈익빈 논란

  • 입력 2000년 5월 21일 20시 27분


가정주부 김모씨(37)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은 3년전. 김씨는 국내의 유명 병원에서 유방암 절제수술을 받았지만 얼마 안가 재발하자 같은 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았다. 엄청난 진료비에도 불구하고 차도가 없자 김씨는 친척의 소개로 미국의 대표적 병원인 존스홉킨스대학 병원으로 건너가 2차 수술을 받았다.

▼“公보험쇠퇴”시민단체 반발▼

김씨는 “한국에도 의료보험제가 있지만 암에 걸리면 집 한 채 값이 날아가는 것은 상식”이라며 “미국에서 수술받고 가족이 간호하느라 많은 돈을 썼지만 한국에 있었으면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병도 낫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환자들이 보다 높은 진료를 받기 위해 선진국행을 택하는 것은 ‘저부담 저급여’ 본위의 우리 의료보험이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충분한 급여를 해주지 못하기 때문.

정부가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 국민의 의료서비스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의 의료보험(공보험)을 보완하는 민간 의료보험 제도(사보험) 조기 도입을 추진해 논란을 빚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사보험 도입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자 시민단체들이 의료서비스의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고 공보험의 쇠퇴를 가져온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은 보험회사들이 각 개인과 계약을 맺어 계약당사자가 질병에 걸릴 경우 보험금으로 진료비를 대납하는 제도로 미국에서 채택되고 있으며 유럽 일부 국가에서 공보험보조 수단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현행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촬영과 특진 및 특실 입원비 등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낮은 비용으로 받을 수 있을 뿐더러 계약 내용에 따라 암 등 특정질환에 대해서도 충분한 보험급여를 받게 된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은 가입자와 보험회사간 계약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소득이 많은 중상류층에는 유리하고 저소득층은 질높은 의료혜택에서 제외되는데다 정부가 의사 병원 등을 통제할 수 없어 사회 전체적으로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문제점이 있다.

▼MRI 高價진료 서비스▼

이와 관련, 건강연대 참여연대 등은 사보험 도입은 공보험 발전에 저해가 된다며 추진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강행할 경우 저지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단체는 보험급여 범위 확대, 본인부담금 인하 등 공보험을 내실화하지 않고 민간보험을 도입한다면 공보험 개혁은 더욱 멀어지고 취약한 의료보험 재정을 중산층 이하의 국민이 떠안게 된다고 비판했다.

사보험 도입에 대한 의료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현행 의료시스템으로는 환자가 좋은 의사에게 환자 대접을 받으며 제대로 진료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사보험으로라도 환자에게 질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균관대 의대 나덕렬교수(삼성서울병원 신경과)는 “미국에선 환자 1명에 2시간씩 진료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여건상 하루 50여명의 환자를 보고 있다”며 “하루 빨리 사보험 도입 등으로 진료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환영-반대 엇갈려▼

생체 간이식의 경우 서울중앙병원에서의 수술성공률이 94%로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많은 환자들이 미국으로 향한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는 연간 50여명의 한국인이 간이식을 받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약값이나 입원비 수술비만도 100만달러(한화 11억2000만원)가 넘는다.

반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참된 의료실현을 위한 청년한의사회 등 진보적 의사단체들은 “7월 출범하는 통합 건강보험의 급여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라며 반대입장을 밝혀 사보험 도입방안은 의료계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송상근·이성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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