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옵션보다 高연봉 좋더라"…벤처직원 이직 새바람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08분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포털사이트 A사에서 시스템 운영을 담당하던 K씨(27)는 입사 당시 받았던 스톡옵션 5000주를 포기하고 최근 보험관련 사이트를 운영하는 B사로 옮겼다.

액면가는 5000원이지만 코스닥에 등록하면 최소한 10배 이상 뛸 것이라는 스톡옵션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밤을 새우는 격무에 시달리면서 2000만원이 채 안되는 낮은 연봉을 받고 일하느니 차라리 현재 연봉의 두 배를 주겠다는 B사의 제안을 선택한 것.

특히 수익 모델은 전혀 없이 외형만을 키우고 있는 회사가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3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여기에 최근 코스닥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이직을 결심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스톡옵션의 ‘약발’이 다한 것일까.

최근 벤처기업 직원들 중에서 ‘불확실한’ 스톡옵션을 포기하고 높은 연봉을 받는 안정된 기업으로 옮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벤처기업의 열악한 근무 여건에도 원인이 있지만 상당수 벤처들이 별다른 수익모델이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현금화가 불확실한 스톡옵션만으로 직원들을 붙잡는 행태가 한계에 이른데서 기인한다는 분석.

특히 상당수 벤처기업이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고 외형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사업을 시작할 당시의 ‘벤처 정신’을 잃어버리고 조직이 관료화하는데 따라 직원들이 실망하는 것도 다른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터넷 벤처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최근 다른 벤처기업 콘텐츠 기획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A씨(여·28)도 회사를 옮기면서 1000주의 스톡옵션을 포기했다. 1년만 더 다니면 장외에서 10만원(액면가 5000원)을 호가하는 이 회사 주식을 처분해 큰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관료화돼가는 회사 분위기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

그는 회사를 옮기면서 3년후에 행사할 수 있는 스톡옵션을 제의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연봉 인상을 요구했다. 스톡옵션에 얽매이고 싶지 않고 언제든 더 나은 비전과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옮겨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

최근 한창 ‘뜨고’ 있는 인터넷 벤처기업에서 근무하다 스톡옵션 없이 고액 연봉을 받고 경쟁사로 옮긴 Y씨(35)는 “스톡옵션은 신 노비문서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벤처 업계에서는 몇 년후에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스톡옵션에 연연하느니 차라리 현찰을 챙기겠다는 의식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인찬박사는 “상당수 인터넷 기업들이 제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장래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톡옵션을 포기하는 인력 이동은 당연한 결과이며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인력이동은 결국 벤처기업의 거품을 빼고 옥석을 가려주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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