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3社 인터넷판매 진퇴양난…"당분간 그냥 가자"

  • 입력 2000년 2월 29일 19시 10분


현대 대우 기아 등 국내 자동차 3사가 전자상거래와 관련,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다.

인터넷 자동차 판매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자니 노조가 반발하고 인터넷 판매상을 수용하지 않으면 디지털 물결에 뒤질 가능성이 높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자동차 3사 노조는 최근 회사측에 “인터넷 자동차 판매상이 일부 딜러와 제휴, 인터넷으로 자동차 판매를 하면서 직영 영업사원과 대리점의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있다”며 “회사가 인터넷 자동차 판매를 막아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한해 자동차 판매량 150만대의 1%도 안되는 인터넷 판매에 노조가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전자상거래의 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인터넷 판매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결국 1만7000명의 직영 영업사원들의 설자리가 아예 없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현재 인터넷 자동차 판매상들은 자동차 회사가 인정한 대리점이 아니다. 인터넷 판매상은 소비자가 온라인상에서 구매의사를 밝히면 제휴를 맺은 대리점과 연결해 자동차를 판매한다. 인터넷 판매상의 중개를 통해 차를 판 대리점 업주는 자동차 회사로부터 받은 판매수당(차값의 약 6%)을 인터넷 판매상과 3%씩 나누어 갖는다. 인터넷 판매상은 고객 확보차원에서 차값을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이 돈을 고객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새롭게 형성되는 이 유통구조에 직영사원은 참여하기 힘들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대신 판매수당은 대리점보다 적은 차값의 1%만 받는다. 이 때문에 인터넷 판매상과 제휴할 여지가 거의 없다.

앞으로 대리점들이 판매실적을 올리기 위해 인터넷 판매상과 제휴를 강화하게 되면 직영사원은 차를 팔기가 더 힘들어질 전망.

이같은 상황에서 자동차 회사가 노조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전자상거래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며 지금처럼 “인터넷 판매상과 제휴하는 대리점에는 차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봤자 실적 욕심에 인터넷 판매상과 제휴하려는 대리점의 움직임을 일일이 단속할 수도 없기 때문. 인터넷 판매상을 고사시키기 위해 자동차 회사가 직접 전자상거래 회사를 차리는 방안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가 자동차 회사와 직접 전자상거래를 통해 차를 구입해도 회사는 대리점의 반발 때문에 대리점보다 싼 가격으로 차를 팔 수 없고 한 회사의 제품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사이트는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기 쉽다는 것이 자동차 회사의 자체 판단.

이 때문에 일부 실무진은 “인터넷 판매상을 대리점으로 인정하고 직영 영업사원을 정리, 인터넷 판매상과 기존 대리점을 병행시키는 체제로 가야 한다”고 경영진에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행하기 어렵다. 1만7000여명에 달하는 직영 영업사원을 경제논리만을 앞세워 구조조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것이 간부들의 판단. 이런 상황 때문에 자동차 회사 내부에서는 “당분간 그냥 가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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