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전염병 우울증 '사이버 의술'로 치료한다

  • 입력 1999년 12월 31일 19시 36분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 인류를 가장 괴롭힐 질병으로 우울증을 꼽고 있다. 이미 세계인구의 5∼6%가 시달리고 있으며 여성의 12%, 남성의 8%는 죽기 전에 반드시 한 번은 걸리게 돼 있는 질병이 우울증이다.

새 천년, 디지털 문명의 발달로 인간이 그만큼 행복해지리라고 기대한다면 오산.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만큼 삶을 지탱해주던 끈끈한 인간관계는 힘없이 무너지게 된다.

개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한편 공동체적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한 유아기의 엄마―자녀관계의 붕괴, 정신건강에 대한 욕구와 관심의 증가 등으로 인해 우울증은 새 천년의 ‘전염병’으로 자리잡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백신과 치료약으로 병을 정복해 온 인류는 우울증에 대해선 첨단 테크놀로지로 맞설 기세다. 우울한 기분, 흥미감소, 식욕과 체중의 극심한 변화, 피곤, 집중력장애, 무기력감 등의 우울증상을 일으키는 상황을 가상현실에서 정교하게 재현해 우울증을 극복하는 것.

예를 들어 남편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고 치자.

가상현실로 몸 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똑같이 만들어진 ‘진짜와 다름 없는 가짜’ 남편과 일정기간 살면서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가짜와 다름 없는 진짜’ 남편과 실제상황을 사는 것은 문제도 아니게 된다.

이같은 가상치료는 이미 미국 대학과 연구소에서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소공포증 환자에게 비행시뮬레이터를 통해 높은 곳에 적응하도록 만들어 고소공포증을 근복적으로 없애는 치료가 그것이다.

다만 가상우울증 치료시스템이 실용화될 경우 ‘슬픔 없는 세상’속에 사람들은 되레 기쁨의 가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행복을 느끼려면 상대개념인 불행도 알아야 하는 법. 따라서 우울이 무엇인지 맛보기 위해 되레 ‘우울체험 가상현실’ 장치에 몸을 맡길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과거 동의보감에서는 인체의 뜨거운 기운과 찬 기운의 불균형으로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았다.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혔던 고 다이애너 영국왕세자비는 우울증 치료약 프로작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뎠다. 인체에 화학작용을 가하고 상담 또는 연극을 통해 ‘가상현실’속에 우울한 기분을 잊어보려 했던 노력들은 앞으로 2999년, 디지털신호로 과거 문물을 보관해둔 가상현실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움말〓연세의대 정신과 현용호교수, 자생한방병원 2내과 이성환과장, 덕성여대 심리학과 김미리혜교수)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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