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핵합의 정신에 부응 안해”… 핵협정 폐기 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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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예정 ‘對이란 전략구상’ 주목
핵합의 불인증 하거나 판단유보땐 의회, 60일내 제재 재개 결정해야… 일각 “파기 아닌 재협상 전략” 분석
美언론 “트럼프 ‘폭풍 전 고요’ 발언… 예상못한 위기 부를수도” 일제 비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로 잠정 예정된 포괄적 대(對)이란 전략 구상을 발표하면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철회를 선언할 계획이라고 최근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이란 핵합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며 의회에 이란 제재에 대한 공을 넘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에 올린 “폭풍 전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도 북한이 아니라 이란에 대한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다음 주 이란 핵합의 ‘불인증’을 선언할 것이라는 WP의 보도 직후 이 같은 발언이 나왔다. 그는 5일 백악관에서 이란 핵합의를 주제로 군 수뇌부를 소집해 연 회의에서 “이란은 핵합의 정신에 부응하지 않아 왔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란 핵합의 타결 이후 미국 행정부는 이란의 핵합의 준수 여부를 90일마다 평가해 미 의회에 제출해 왔다. 트럼프 정부의 이번 평가 마감기한은 15일이다. 의회는 이를 토대로 대이란 제재 면제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불인증’하거나 판단을 유보하면 의회는 60일 안에 제재 재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다만 의회도 판단을 유보하고 최종 결정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길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 불인증을 발표할 경우 이는 제재 재개로 가는 첫걸음을 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WP는 “이 조치로 2015년 미국이 서방 5개국과 함께 맺었던 이란의 핵활동 제한을 위한 합의가 깨질 수 있다”고 전했다.

핵합의 파기보다는 재협상을 통한 개정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해당국과의 협정 파기를 수차례 언급하며 재협상 구도를 만들어왔다. 최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재협상 불가’ 방침을 분명히 밝힌 것도 이 같은 구도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란은 핵합의 당사자인 유럽이 트럼프의 핵합의 파기 위협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지난달 말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이 주도권을 잃고 미국 정부를 따른다면 핵합의는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핵합의 이행을 일부러 인증하지 않고 의회가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헬가 슈미트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 사무총장은 최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유럽-이란 포럼에서 “이란 핵합의는 작동하고 있다”며 “핵합의 없는 세계는 그만큼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미국 내부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대통령의 관심끌기용 발언이 예상치 못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의 ‘폭풍 전 고요’ 발언이 이란 핵합의 파기를 위한 수순, 북한이나 시리아와 관계된 행동,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세 강화를 의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 접근하고 있는 허리케인 ‘네이트’를 빗댄 표현이라거나 의미 없는 말에 불과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놨다.

CNN은 ‘트럼프가 잠재적 전쟁을 리얼리티쇼의 클리프행어(진땀나는 상황)처럼 다룬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 위해 중대한 외교안보 현안을 자신이 과거에 출연했던 리얼리티쇼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리언 패네타 전 미 국방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전임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면 진짜 걱정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이제 육성으로 트윗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악관 관계자들도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해 혼란을 키웠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폭풍 전 고요 발언의 진의를 묻자 “대통령이 기자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며 “대통령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들을 항상 모색해왔으며 그런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진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AP통신과 여론조사기구 NORC 공공문제연구소가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32%까지 떨어졌다.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4%로 6월보다 10%포인트나 하락했다.

카이로=박민우 minwoo@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트럼프#이란#핵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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