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7>벚꽃 흩날리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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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벽천 경찰서 강력 2팀 소속 최 형사는 자신의 책상 앞 철제 의자에 앉은 남자를 찬찬히,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벚꽃이 흩날리는 사월 초순의 목요일 오후였다. 다른 강력팀 소속 형사들은 탐문수사나 DNA 샘플을 채취하러 나간 상태였고, 사무실엔 그와, 강력 1팀 소속 박 형사만 남아 있었다. 박 형사는 벌써 한 시간째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최 형사 또한 불과 오 분 전까지만 해도 책상 위에 발을 올린 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봄이니까. 그는 자신이 어쩐지 수업을 일찍 마친 교사가 된 듯싶었다. 최 형사는 주말엔 아내와 함께 하동 쌍계사라도 다녀와 볼까, 눈을 감고 잠깐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사건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내와 함께 벚꽃 십 리길을 걸어볼 수도 있으련만. 봄엔 유달리 강력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제가 전화 받은 김승혁이라는 사람인데, 여기로 오는 게 맞습니까?”

최 형사는 책상 위에 올린 발을 내리면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굵고 낮은 음색의 목소리였다. 최 형사는 그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무춤,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았다. 남자는 록 음악을 하는 가수처럼 등까지 길게 기른 생머리에 검은 도복 차림이었다. 턱 주위론 희끗희끗한 수염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두 눈은 만개한 목련처럼 부리부리했다.

남자는 피고발인 신분이었다. 이 주 전이던가, 관내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의 부모가, 남자를 폭행 및 폭언,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그렇다고 남자 중학생 아이가 딱히 다친 곳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고소장엔 남자가 멱살을 잡은 채 몇 번 흔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해결 방안도 빤했다. 화해시키는 것. 그것이 담당 형사가 해야 할 몫이었다.

“차량 운행을 하다가 바로 와서 차림이 이렇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남자는 마치 오래전 헤어진 사형(師兄)을 만난 듯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고소장을 보니 남자는 검도 도장 사범이었다. 나이는 53세. 주소 또한 검도 도장으로 되어 있었다.

“뭐,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고소장이 접수되어서요. 한데, 이건 딱 봐도 쉽게 합의 보실 수 있는 사안 같은데, 어떻게….”

최 형사는 모나미 볼펜으로 책상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남자는 잠깐 두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요즈음 아이들이 다 그렇죠. 그렇다고 함부로 아이들 멱살 잡고 훈계하고 그러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선생님만 괴로워져요.”

남자는 침묵을 지켰다.

“한데, 무슨 일로 아이를…?”

남자는 계속 말이 없었다. 최 형사는 의자를 좀 더 앞으로 당겨 앉았다.

“이게 정식으로 고소장이 접수된 일이라서요, 저희도 경위 같은 것을 작성해야 하거든요.”

남자는 잠깐 허공을 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게… 제시카 양 때문에 그랬습니다.”

“누, 누구요? 제, 제시카요? 그게… 누군데요?”

“왜, 소녀시대 제시카 양 있지 않습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최 형사는 무연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예전부터 제시카 양에 대해서 험담을 많이 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 같은 곳에서도…. 그래서 제가 참을 수 없어서….”

최 형사는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이게 뭔가?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사생팬이라는 건가? 오십대 남자가? 그것도 검도 사범이?

“저도 화해하거나 사과할 생각이 없습니다. 후회도 없고요. 그냥 법대로 해주십시오.”

“아니, 선생님. 이게 그렇게까지 갈 사안도 아니고… 서로 좋게 좋게….”

“아니죠. 그러면 누굴 사랑하는 게 아니죠.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최 형사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노트북 전원을 켰다. 봄이니까. 봄이니까. 최 형사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창밖에선 또 한 번 난분분,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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