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66>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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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러지 않아도 자방 선생을 찾아뵈려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함께 가시지요.”

진평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장량이 오히려 어리둥절해하는 눈으로 진평을 보고 물었다.

“그렇다면 진호군도 나와 같은 뜻이었소?”

“예. 진작부터 대왕께 항왕을 뒤쫓자고 권하고 싶었으나 자방 선생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기에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장량이 손뼉을 치며 감탄한 듯 말했다.

“어질고 밝은 사람의 헤아림은 언제나 같다 하니, 진호군께서 그렇게 보신다면 이제 나도 마음이 놓이는구려. 그렇소이다. 이제는 우리 대왕으로 하여금 항왕을 뒤쫓아 천하 형세를 결판 짓고 이 고약한 전란의 시대를 끝내게 해야 하오.”

그리고는 어깨를 나란히 해 한왕의 군막을 찾아갔다. 그새 마음이 느긋해진 한왕이 마침 산과 바다에서 난 맛난 음식을 한 상 가득 받아 놓고 즐기다가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 수저를 놓으며 물었다.

“어서 오시오. 오늘은 무슨 일로 두 사람이 나란히 과인을 찾아오셨소?”

장량과 진평 모두 얼굴이 굳어 있어 그런지 한왕도 왠지 긴장한 얼굴이었다. 장량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대왕. 어서 빨리 대군을 내어 항왕을 뒤쫓아야 합니다. 이번에 항왕을 놓아 보내면 두 번 다시 그를 사로잡을 기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자방 선생. 우리 한나라 군사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광무산에서 항왕의 군사들에게 에워싸여 곤란을 겪었소. 저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한데 어떻게 저들을 뒤쫓고 사로잡는단 말이오?”

한왕이 어림없다는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장량이 한층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한나라는 천하를 셋으로 나눈 것의 둘을 가졌고(태반·太半=삼분유이·三分有二) 제후들도 모두 대왕을 따르고 있습니다. 거기 비해 초나라는 군사들은 지치고 식량은 다했으니 이는 하늘이 초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때입니다. 이 틈을 타 초나라를 쳐 없애지 않고 이대로 놓아 보낸다면 이는 바로 호랑이를 길러 스스로 걱정거리를 남겨 두는 것이나(양호자유환·養虎自遺患) 다름없습니다.”

그 말에 한왕의 얼굴이 다시 굳어지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장량 곁에 있는 진평을 돌아보며 물었다.

“진호군도 그리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초군(楚軍)의 강함을 말씀하시나, 이미 초군은 지난 열 달의 피로와 굶주림으로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고, 당장 강해 보이는 것도 꺼지기 전의 촛불이 오히려 휘황해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초군은 항우 한 사람의 기력과 무용으로 허장성세(虛張聲勢)하고 있는 갈까마귀 떼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전군을 들어 한번 힘주어 후려치시면 초군은 질그릇처럼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진평이 그렇게 말하자 한왕은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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