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34>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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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왕 유방은 파촉(巴蜀) 한중(漢中)과 삼진(三秦)을 근거로 삼고 무관(武關)과 함곡관을 나와 한(韓) 위(魏)의 옛 땅을 거의 아우르고 있습니다. 천하를 셋으로 나누면 그 하나가 한왕의 것이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또 한신은 제나라 왕에 지나지 않고 조왕 장이와 연왕 장도가 따로 있으나, 조(趙) 연(燕) 제(齊)는 이미 한신의 손아귀에 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그 세 나라를 합치면 다시 천하를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런 한왕 유방이 제왕 한신을 거느리고 우리 서초(西楚)를 치면, 이는 천하 셋 가운데 둘을 들어 그 하나에 채 못 미치는 것을 치는 격이 되니, 대왕의 신무(神武)하심으로도 끝내 버텨 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신을 한왕에게서 떼어내 대왕의 편으로 만드는 것은 곧 대왕의 천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거기다가 한신에게 줄 천하의 삼분지 일은 이미 그 자신이 힘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그에게 내준다 해서 새삼 아까울 게 무엇이겠습니까?”

거기까지 듣자 패왕도 무섭(武涉)이 무슨 말을 하는지 겨우 알아들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지만, 그래도 불끈거리는 제 성을 이기지 못해 한참이나 씨근대다가 마지못한 듯 허락했다.

“좋다. 저 밉살스러운 유방놈을 잡을 수 있는 길이 그뿐이라면 한번 해보자. 하지만 과인을 욕되게 해서는 아니 된다. 반드시 한신을 달래 과인과 함께 유방을 치도록 만들라.”

이에 무섭은 그날로 폐백을 갖추고 거창하게 사신의 행렬을 꾸며 제나라로 달려갔다. 제나라 경계에 이른 무섭이 관을 지키는 제나라 장수에게 일렀다.

“나는 서초 패왕의 사신으로 제왕을 찾아뵈러 임치로 가는 길이외다. 먼저 제왕께 그리 연통하고 길을 안내해 주시오.”

그 말에 제나라 장수가 무섭에게 길을 열어주는 한편 유성마(流星馬)를 놓아 임치에 그 일을 알렸다. 연통을 들은 제왕 한신이 한마디로 무섭을 내치게 했다.

“항왕의 사신이 과인에게 무슨 볼일이 있겠느냐? 듣는 귀만 시끄러울 것이니 임치로 들이지 말고 초나라로 돌려보내라.”

그때 곁에 있던 괴철이 말렸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사행(使行)을 그리 함부로 막는 법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어보고 내쳐도 늦지 않으니 일껏 찾아온 사신을 만나 보지도 않고 내치지는 마십시오.”

그러자 한신도 못 이긴 척 사신을 받아들이게 했다.

며칠 뒤 임치에 이른 무섭은 사신의 예를 마치기 바쁘게 한신을 올려보며 물었다.

“제왕께서는 나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듯은 하지만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소. 사신은 과인을 어디서 만난 것이오?”

“회음 저잣거리였습니다. 이제는 기억하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한신의 얼굴빛이 착잡하게 얽혔다. 회음 저잣거리라면 한신에게는 애틋한 그리움도 있지만 회한도 많은 곳이었다. 마침내 왕업(王業)에 이르게 된 큰 뜻을 키웠지만, 또한 가난하고 이름 없는 시절의 온갖 남루한 기억과 욕스러운 이력을 그곳 사람들의 머릿속에 쌓아간 곳이기도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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