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선택, 보수주의]<5·끝>정부는 작게-기업은 크게

  • 입력 2005년 3월 10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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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청높인 부시4일 미국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의 노트르담대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조지 W 부시 대통령(가운데)이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해 ‘소유주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목청높인 부시
4일 미국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의 노트르담대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조지 W 부시 대통령(가운데)이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해 ‘소유주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인 A 씨=35세. 1년 소득 5만 달러(약 5000만 원), 연간 사회보장세금(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 지불액 310만 원(평균세율 12.4%의 절반).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현실화하면 210만 원(8.4%의 절반)은 계속 세금으로 내지만 자기 돈 100만 원과 정부 지원금 100만 원을 합쳐 200만 원(4%)은 그의 통장에 입금돼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된다. 단 은퇴할 때(현 65세)까지는 손 댈 수 없다.》

A 씨의 지지 정당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만 65세가 될 때까지 자신이 ‘소액주주’로 있는 상장 기업의 심리적 후원자가 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가 기업중심주의를 강조하는 공화당과 개발 제한 및 분배 중시 정책을 펴는 민주당 가운데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민주당이 “공화당의 30년 정권 장악 음모”라며 사회보장제도 개혁(부분적 민영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부시 대통령이 집권 2기 취임사에서 선언한 ‘소유주 사회(Ownership Society)’ 추진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태풍의 눈 ‘소유주 사회’=미국 정치권은 지금 ‘소유주 사회’를 놓고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소유주 사회란 ‘주택 주식 정부채권 등 자산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책임감 있게 설계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미국인을 자산 소유자로 만들어 놓겠다는 구상. 현재 미국 가구의 68%가 자기 집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인의 60% 이상이 주식 보유자다.

핵심 정책은 A 씨의 사례처럼 사회보장 세금의 일부를 ‘개인 돈’으로 바꿔줌으로써 미래의 재정 파탄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2018년 이후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부시 대통령은 틈만 나면 전국을 돌며 “지금 손 안 대면 큰일”이라고 개혁을 호소하고 있다. 워싱턴 카토(CATO)연구소는 “세를 사는 사람과 집주인 가운데 누가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겠느냐”며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조그비 인터내셔널의 2002년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68%가 민영화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최근 AP통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5%가 반대했다.

2000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은 지난주 ‘지지 선언’을 했고, 공화당 일부 의원은 반대하는 등 정당별 지지 구도도 뒤죽박죽이다.

정작 보수적인 월스트리트 저널이 제도의 앞날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 신문은 “은퇴 후 소득원이라고는 사회보장 연금뿐인 하위 20% 저소득층에 대해선 투자한 주식이 경기 하락으로 휴지조각이 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부시 대통령의 구상은 자산가에게 유리한 정책”이라고 썼다.

▽정치적 함의=워싱턴에서는 ‘공화당은 아버지 정당, 민주당은 어머니 정당’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다. 공화당은 돈을 벌어 오고(기업 중시) 도둑 잡는 일(국방력 강화)에 충실하고, 민주당은 병들고 지친 아이들을 거둬들이는 일(사회보장 및 복지제도)에 주력한다는 점을 빗댄 표현이다.

그러나 공화당의 사회보장개혁이 시작되면 ‘민주당=사회보장제도의 보루’라는 공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가뜩이나 보수화하는 유권자를 상대로 더욱 버거운 득표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이 국내 개혁 2차 과제로 꺼내 든 의료소송 남발 방지책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피해는 환자 가족이 당하고 소송에 휘말린 병원은 엄청난 재정 피해를 보지만 변호사만 실속을 차리는 기형적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환영할 만한 개혁이지만 문제는 소송전문 변호사들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자 정치헌금 창구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싹을 자르려는 노림수라는 비판론이 없지 않다.

▽친기업 정책과 자기모순=부시 대통령이 소유주 사회 건설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주식회사 미국’을 동경하는 미국인의 독특한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미국인은 분명히 예술가나 철학자보다 창업에 성공한 벤처기업인을 더 존경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부시 대통령의 친기업 정책은 자신의 경험, 보수주의 철학, 정치적 손익계산서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는 경영학석사(MBA) 출신의 첫 대통령인 동시에 석유회사와 프로야구단(텍사스 레인저스) 오너였다. 실제 그는 학력보다 기업경영 경험을 높이 산다. 그가 지명 또는 임명한 부통령 국방장관 대통령비서실장 상무장관 재무장관 등 전현직 고위 인사가 줄줄이 대기업 고위 경영자 출신이란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1기 정권 출범 직후 3차례에 걸쳐 대규모 감세정책을 폈고 개발제한 규제를 없앴다. 월스트리트로부터는 “빌 클린턴 정부 하에서 쌓인 닷컴 버블이 터진 후 뒤따를 수도 있었던 경기 후퇴를 감세정책으로 잘 막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동차기업 GM 간부 출신인 앤드루 카드 백악관비서실장, 에너지산업체 핼리버튼 최고경영자인 딕 체니 부통령의 존재는 ‘지나치게 대기업만 옹호한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자기모순도 많다. 우선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부시 행정부가 정부 지출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있다. 물론 이라크전쟁,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지출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그는 의회가 제시한 정부 지출 증액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거의 없다. 교육투자 사회보장확대 기업보조금 확대 등에서도 큰 정부를 지향하는 모습이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자료조사=김아연 정보검색사

▼“부시 감세정책 경제회복에 도움”▼

회계 및 컨설팅 법인 딜로이트 투시의 칼 스타이트먼(사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는 속성상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과 친(親)기업정책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기술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의 컨설팅과 경제분석을 담당해 왔다.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이 지나친 재정적자 확대를 불렀다는 비판이 있다.

“2001, 2003년의 대규모 감세 등 3차례 세금 삭감이 경기 부진을 조기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시한부 감세였던 만큼 즉각적인 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감세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 때 제로 상태로 돌아왔던 재정이 지난해 말 사상 최대치인 4125억 달러(약 413조 원)의 적자를 가져왔다.

“경기후퇴 때는 재정적자가 항상 있었다. 국내총생산(GDP)의 3.6% 규모인 현재 적자 규모는 오히려 1990년대보다 작은 셈이다. 1990년대 클린턴 정부에서는 의회를 공화당이 장악하는 바람에 정부지출 확대 등 정책을 구사하는 데 제한이 많았다. 지금 공화당 정부는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만큼 대책 마련 및 문제 해결이 더 쉬울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소유주 사회’ 추진을 밀어붙이고 있다.

“주식 및 주택 소유를 통해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한다는 그 개념은 경제에 긍정적인 만큼 장려해야 한다. 사회보장제의 문제점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현재 상태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보장 세금의 일부를 개인계좌로 옮겨 운용하는 데에 문제는 없을까.

“제도 개편에선 구체적인 내용이 중요하다. 현재 정부에 맡겨놓던 돈의 3분의 1가량을 개인 계좌로 옮기는 작업에만 2조 달러(약 2000조 원)의 비용이 들 것이란 추산이다. 하지만 제도를 그냥 두면 앞으로 10조 달러의 문제가 생긴다. 더 심각하지 않은가.”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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