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시대]<10>나는 투자신탁으로 간다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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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21일부터 23일까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도전에 직면한 투자자 돕기’라는 주제로 미국 투자신탁협회(ICI)의 연례 회원총회가 열렸다.

“미국 투신 산업과 투자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금융 환경에 직면해 있습니다. 기업들의 회계 스캔들과 수익성 악화 때문에 2000년 이후 3년 동안 미국 주식시장은 침체에 빠졌습니다. 또 40년 만에 금리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투자수익은 물가상승률을 밑돌고 있습니다.”(파울 하가 회장·기조연설에서)

실제로 2000년 이후 주식형 펀드의 투자자금이 크게 줄었다. ICI에 따르면 미국 전체의 주식형 펀드 자산은 2001년 말 3조4180억달러에서 2002년 말 2조6670억달러로 22% 줄었다. 2002년 말 자산은 2000년 증시 최고점과 비교해 42%나 감소했다. 채권형 등을 포함한 전체 투신권 자금도 다소 줄어들었다.

그러나 총회에 모인 전국의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시장 상황은 험악했지만 투신 산업은 비교적 건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이후 미국 펀드투자자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전히 전체 가구의 절반은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개별 주식 투자자는 99년 15%에서 2002년 11%로 줄었다. 펀드에만 투자하는 사람은 46.7%에서 51.5%로 늘었다.

▽최고의 자산은 투자자 신뢰=이에 대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한 관계자는 “미국 펀드 산업이 축복받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구설수에 덜 휘말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자자의 신뢰가 깊다는 말이다.

하가 회장은 “투신업계의 신의성실과 투자자의 신뢰는 투신 산업의 기초 토대이며 투자자들은 펀드가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매튜 핑크 ICI 사무총장도 “투신 산업 종사자들은 법에 의해 또는 자발적으로 투자자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우리는 SEC가 투자자 이익을 위해 펀드 산업을 효과적으로 규제 및 조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투자자에게 이익이 되는 새로운 규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법과 규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투자자를 돕는 필요한 조치들을 자발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합시다.”

투자자의 이익을 누누이 강조하는 한편 투자자를 위해서라면 당국의 규제를 더 받겠다는 것이다.

▽미국 펀드 산업의 경쟁력=개별 펀드마다 차이가 크지만 분산투자와 전문성 등 펀드 투자의 장점은 약세장에서도 확인됐다.

평가회사인 모닝스타가 조사한 결과 2002년 한 해 동안 개별 주식의 연말 주가가 연초 주가보다 60% 이상 떨어질 확률은 5분의 1. 그러나 펀드의 연말 자산이 연초 자산보다 60% 이상 줄 확률은 807분의 1로 나타났다.

펀드 투자자가 부담하는 비용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ICI가 1980∼2001년 투자자의 펀드 비용을 조사한 결과 주식형 펀드 비용은 43%가 줄었다. 채권형 펀드는 41%, 머니마켓펀드(MMF)는 35% 비용이 내렸다.

ICI 홍보 담당 간부인 존 콜린스는 “업계의 경쟁 심화로 수수료가 낮아지면서 전체 펀드투자자의 79%가 업계 평균보다 수수료가 싼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되는 자금의 성격도 펀드 산업 건재를 설명하는 요인이다. 주식형 펀드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은 미국 근로자들이 노후 퇴직자금 마련을 위해 가입한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이다. 이는 미래를 위한 장기투자 자금이어서 증시의 기복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국증권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전체 뮤추얼펀드 자산 가운데 퇴직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91년 23%에서 2001년 33%로 늘어났다.

▽업계의 노력과 언론의 역할=펀드를 이용해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는 투자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업계도 다양한 전략을 개발했다.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국제펀드와 가치투자로 투자자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스티븐 도버 국제 자산운용책임자(CIO)는 “단기적 시장 변동에 좌우되지 않고 주식이 쌀 때 사서 제값이 되면 파는 장기투자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피델리티는 기업연금 자금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성공을 거뒀다. 인덱스펀드 전문 운용사인 뱅가드는 펀드 비용을 혁명적으로 낮춰 ‘비용의 제왕’이라고 불린다.

콜린스씨는 “언론이 다양한 기준으로 펀드 성과를 상세히 보도하기 때문에 운용사와 펀드매니저들이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워싱턴=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예술품 펀드'…세계적 금융회사 투자비중 키워 ▼

잘 익은 포도주, 예술가의 혼이 살아 숨쉬는 그림과 조각들….

경매시장 및 박물관에 진열된 상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이나 금융기관들이 관리하고 있는 투자 대상이다.

채권이나 주식, 부동산이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값이 올라 수익이 난다면 무엇이든 투자 대상이 된다. 빈센트 반 고흐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등 이미 유명한 작품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경매시장을 거칠수록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소위 ‘예술품 펀드(art fund)’라고 불리는 이런 투자상품들은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유럽에서 먼저 발달했다. 프랑스 등지에서는 보르도와 메독산(産) 등 포도주 및 포도농장에도 투자한다.

프랑스 금융회사인 BNP파리바는 1975년에 이미 예술품에 투자하는 상품 개발을 시작했다. 이 회사에는 작품 발굴 및 감정에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전문가 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를 이용하는 거액의 자산가 고객을 중심으로 투자할 예술품의 정보 제공, 상품 추천, 투자자와 예술가간 교류도 주선해 준다.

르네상스시대부터 1970년대 모던아트 작품까지 모두 포함되지만 현대미술 분야는 감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유행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현대미술은 가격 변동이 크기 때문에 투자 위험성이 너무 높다는 것. BNP파리바의 프랑수아 드비에스 PB 대표는 “고객들에게 예술작품이 투기적인 단기투자 대상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런 투자는 최소 10년에서 15년의 기간을 두고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영국에서는 철도연금기금이 1970년대부터 기금의 일부 자금을 미술품에 투자해 왔다. 연평균수익률은 11% 수준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자산운용사 FAM은 작년 4월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3억5000만달러 규모의 예술품 펀드를 출범시켰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이 펀드는 10년 동안 환급이 불가능한데도 투자 문의가 끊이지 않아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금융업이 발달한 미국에서도 이 분야를 주목하고 있다. 시티그룹이나 UBS워버그 등 세계적인 투자회사의 PB 투자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예술품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 최근 3년 동안 미국의 미술품 투자수익률이 평균 54%를 기록했다는 통계수치도 투자대상으로서의 예술품의 매력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영화 ‘바람난 가족’이 인터넷 펀드를 결성해 네티즌들에게 10억원을 끌어 모은 것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는 증권거래법이나 투자신탁업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식 펀드 형태는 아니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자산운용법이 시행되면 금융권에서 다루는 펀드에도 예술품 등 이색 투자대상이 포함되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샐러리맨을 위핸 펀드, 인터넷서 인기몰이 ▼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지나 성숙단계에 접어든 만큼 경제운영과 경영방식은 물론 자산운용 전략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상향하는 경제에서는 금리도 높아 예·적금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산이 늘어나지만 성숙경제에서는 금리가 0%에 가까워 예·적금만으로는 자산이 감소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주식투자에 적극 나서야 자산을 불려 나갈 수 있습니다.”

일본 사와카미 투신의 사와카미 아쓰토 사장(62·사진)은 “이런 역사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샐러리맨을 위한 사와카미 펀드를 3년 전에 만들었다”고 밝혔다.

경기가 바닥인 경우 주가도 바닥이기 때문에 주식을 사고, 경기가 회복해 금리가 상승하면 경기 8분능선 쯤에서 주식을 팔아 현금을 보유한다. 다시 경기가 하강해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에 투자해 시세차익을 얻는 방법으로 일본 샐러리맨들의 자산을 불려준다는 것.

샐러리맨을 위한 펀드이기 때문에 사와카미 펀드는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받지 않는다. 5월 현재 사와카미 펀드의 순자산은 411억600만엔(약 4110억원), 고객은 3만4349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99.8%가 개인이다.

사와카미 사장은 “인터넷을 통해 직접 판매하기 때문에 판매수수료(3%)가 없고 운용수수료도 1%로 다른 펀드(1.7∼1.9%)보다 낮아 개인들에게 유리하다”며 “투신을 설립하기 위한 최소자본금이 1억엔으로 규제가 완화된 만큼 개인을 위한 펀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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