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99회…명멸(明滅) (5)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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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목숨뿐 굴종과 단념만 강요당하고 있는 목숨 나는 피부의 긴장을 늦추고 눈을 감는다 삼도천 너머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무슨 꽃이 피어 있을까 왠지 계절은 봄일 듯한 기분이 든다 엉겅퀴 별꽃 개망초 질경이 강아지풀 토끼풀 개여뀌 일본과 조선은 꽃이름도 다르다 중국이나 미국 독일에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 테지 그러나 사람의 이름은 하나뿐이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성과 부모가 지어준 이름 무덤까지 가지고 갈 오직 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가장 긴 이야기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다 왜놈은 조선 사람들의 이름을 잡초처럼 뽑아버렸다 이우철 눈을 뜨자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식칼의 생각과 자기 생각은 다르다고 말하려는 듯 손가락을 하나하나 식칼에서 떼어냈다 식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여자는 악문 이 사이로 숨을 토하고 숨을 다 토하기 전에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을 감자 여자가 사라졌다 꽃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좋을까 모습은 변하지 않으니까 구니모토 우철 이우철 눈을 뜨자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는 안정희 야스다 시즈코 여자는 내 몸을 뒤집었다 훌쩍거리면서 내 머리를 젖가슴에 껴안고 내 머리칼을 휘어잡고 미친 듯이 입맞춤했다 나는 여자의 혀에 질식할 것 같았다 여자가 거기를 잡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지고 나는 아들 옆에서 여자를 안았다 여자가 신음했다 눈물에 여자의 목소리가 달큰해졌다 나는 알몸이 되었다 벌거벗은 혼이 하늘을 향하여 상소했다 목숨을 걸고 애원합니다! 바라건대 이 치욕을 걷어가 주십시오!

1939년 3월1일 구니모토 우철 처 인혜와 합의이혼 신청서 제출 동일 제적

1939년 9월3일 영국 대 독일 선전포고

런던 외교계에서는 영국의 선전포고가 목전에 임박해 있다고 확실시하고 있다. 2일 오후 1시45분(일본 시간 2일 오후 9시45분)에 개회된 의회는 선전포고에 협찬한다고 결정. 추밀 고문회의도 근일 중에 특별회의를 열어 전시 내각 구성에 따르는 만전의 조치를 취할 것을 결정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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