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 작가 위화의 소설 ‘인생’을 읽고 있다. ‘인생’의 주인공 푸구이는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도박에 빠져 재산을 다 날리고 가난한 농부로 살아가게 된다. 에피소드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과거엔 부잣집 아들이 도박, 술, 여자 등에 빠져 지내다가 집안을 망하게 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자식이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기업을 엉망으로 운영해 망한 이야기도 많았다. 돈 많은 집 자식은 대부분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집안을 말아먹었다.
먹고 노는 부잣집 자식 비판하지만…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오히려 부잣집 자식이 더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전에는 재벌가라 해도 2·3세 체제가 된 후 망한 기업이 꽤 있었는데, 요즘은 3·4세 체제에서도 몰락한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친구 A와 만났는데, A가 빵을 들고 왔다. 자기 동네에서 유명한 베이커리 빵이란다. 그러면서 이 빵집 주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빵집 주인 B는 부잣집 자식이다. 젊어서 공부는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놀기만 했다. 돈을 펑펑 쓰면서 방탕하게 지낸 그는 집안의 골칫거리였다. 부모는 그를 사람답게 만들어보겠다며 엄청 노력했다고 한다. 결국 부모의 노력에 감화를 받았는지 자식이 제대로 일을 하려 들었다. 사업을 몇 번 시도했고, 결국 베이커리로 성공했다. 이 베이커리는 그 동네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덕에 항상 손님으로 붐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망나니 자식이 어엿하게 성공한 베이커리 사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 친구 A도 이 이야기를 방탕한 자식이 성실한 자식으로 제 길을 찾아간 미담으로 여겼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는 베이커리 사장 자신이나 그 부모에게는 분명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어떨까. 부잣집 아들이 그냥 방탕하게 놀고먹는 게 좋은가, 아니면 마음잡아 새 사람이 되고 좋은 사업가로 변신해 돈을 버는 게 좋은가. 최근 주요 사회문제는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면서 빈부 격차, 소득 격차, 자산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부잣집 자식이 방탕하게 돈을 낭비하다가 망하는 게 좋은가, 부잣집 자식이 제대로 된 사업가로 자라나는 게 좋은가.
최근 한국 사회는 계층 이동이 점차 감소하는 게 문제라고도 한다. 부잣집 자식이 계속 부자로 남고, 가난한 집안 자식은 가난한 계층으로 남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계층 이동이 많이 일어나는 게 역동적이고 발전하는 사회라고 본다면 부잣집 자식이 재산을 낭비하다가 망하는 게 좋은가, 아니면 그들이 검소하게 열심히 살면서 더 부자가 되는 게 좋은가.
사람들은 부잣집 자식이 일하지 않은 채 방탕하게 놀고 돈을 낭비하는 걸 비난한다. 부모 잘 만나서 편하게 산다며 비판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지 않는다고 욕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 쉬운 사회가 되려면, 그리고 부자가 계속 부자로 남지 않고 계층 이동이 쉬운 사회가 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부잣집 자식이 돈을 벌지 않고 돈을 쓰기만 하는 것이다. 소설 ‘인생’의 푸구이처럼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을 도박이나 되지도 않은 사업으로 말아먹는 게 부자 집안이 대대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하려 한다. “부잣집 자식들은 그냥 놀게 해라.”
부잣집 자식들 놀게 해야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1대에서 크게 성공해 부자가 됐다고 해보자. 그는 부자가 아니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됐다. 1대는 세상의 어려움은 물론, 사업 방법도 잘 안다. 그렇게 일군 부가 당대에 망하기는 쉽지 않다.
2대는 부자 아버지를 둔 자식이다. 하지만 그 자식은 아버지가 부자라고 낭비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2대가 어렸을 때는 아직 아버지가 부자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부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고, 일손이 부족하면 2대가 1대 사업장에 나가 일을 돕기도 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이 장년의 나이에 사업을 계속 확장할 때 자식 정몽구는 공장에 나가 기름때를 묻히며 일해야 했다. 2대는 어려서부터 부자의 삶을 살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업을 일으키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덕에 간접적으로나마 사업에 대한 지식도 있다. 웬만하면 2대는 아버지의 부를 갉아먹지 않는다.
문제는 3대다. 3대는 어려서부터 부자로 살았다. 돈에 대한 감각이 없고, 돈을 절약해야 한다는 것도 잘 모른다. 사업을 일으키는 과정을 보지 못한 데다, 제일 높은 자리에서 이래라 저래라 부하에게 지시하는 모습만 본다. 그래서 집안을 말아먹는 건 보통 3대다. 마음 가는 대로 돈을 낭비하고, 되지도 않을 사업을 벌이다 망하고, 그러면서도 돈 버는 방법은 모른다. 부잣집이 3대를 가지 못한다는 건 보통 3대에서 망하기 때문이다.
이게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부잣집 자식이 점점 더 부자가 되는 게 일반적인 이야기가 됐다. 부잣집 자식이 망나니라는 이야기보다, 부잣집 자식이 공부도 잘하고 더 열심히 일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39개 의대 지난해 신입생 중 강남 3구 고교 출신이 12.17%를 차지한다. 뉴스1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동네는 서울 강남이다. 의대 입학생, 명문대 입학생, 또 로스쿨 입학생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강남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강남은 한국에서 가장 부자 동네다. 가장 부유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한다. 부모가 부자면 자식은 좀 놀면서 재산을 까먹어야 부의 평등이 이뤄질 텐데, 오히려 더 열심히 하면서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 한다.
의사나 변호사 집안 자식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성공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을 때 자식도 의사여야 이 병원을 물려받을 수 있다. 부모가 법무법인을 운영하면 자식도 변호사여야 법무법인을 물려받는다. 자식이 의사나 변호사 자격증을 따지 못하면 그 사업체는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헐값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의사, 변호사가 되려는 동기가 보통 사람보다 강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한다.
사업하는 집안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일하지 않은 채 놀고 지내다가 갑자기 사업을 물려받아야 망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부잣집 아들이 놀면서 지내는 걸 가만두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사업가 자식이 그냥 놀기만 하면 상속세를 깎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 사업을 물려받으려고 부모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상속세를 몇백억 원씩 깎아준다. 그것도 평직원이 아닌 경영진으로 있어야 하고, 또 상속받은 후 2년 이내 사장이 돼야 상속세를 감면해준다.
상속세 감면받으려면 성실한 경영자 돼야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려면 상속인은 상속세 신고 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2년 내로 대표 자리에 올라야 한다. GETTYIMAGES한국 상속세는 사업가 자식의 경우 60%까지 적용된다. 지분 60%를 넘기면 회사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자식이 노느냐 일하느냐는 단순히 자식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상속세 공제를 받아 회사를 계속 유지해나가려면 어떻게든 자식을 젊어서부터 회사로 끌어들여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잣집 자식도 혼자만의 일이라면 마음껏 놀면서 지낼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자신이 회사에서 일하지 않으면 상속세 공제를 받지 못해 집안 전체가 어려움에 빠지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과거 망나니가 됐을 부잣집 자식이 이제는 성실한 경영자가 돼간다.
부잣집 자식들이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건 그 집안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좋다고만 할 수 없다. 계급이 고착화되고 빈부 격차는 더 커진다. 부잣집 자식이 재산을 낭비하며 써버려야 돈이 잘 돌고 보통 사람에게 돈 벌 기회도 많이 주어진다. 부잣집 자식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사업을 물려받은 뒤 망해야 사업가가 새로 등장하고 계층 이동성도 높아진다.
부잣집 자식은 그냥 놀게 내버려둬야 한다. 그것이 빈부 격차가 심화하는, 계층이 고착화하는 사회를 막는 한 가지 방법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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