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300…명멸(明滅) (6)

  • 입력 2003년 4월 23일 18시 54분


코멘트
나는 아들을 목말 태우고 우물가를 달렸다. 히힝!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아내가 낳은 아들을 금쪽 같은 장남을 따가닥 따가닥 이씨 가문을 이을 장남을 히힝! 아들은 모른다 히힝! 따가닥 따가닥 엄마가 아닌 여자가 너의 남동생을 낳았다 그 여자의 꾐에 넘어가서 아니 너의 남동생을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아버지는 엄마를 호적에서 파냈다 따가닥 따가닥 이혼 따가닥 따가닥 아버지하고 엄마는 이제 부부가 아니다 따가닥 따가닥 네 엄마의 뒤통수를 친 셈이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여자가 호적을 보는 일은 그리 흔치 않으니까 어쩌면 끝까지 모르고 죽을지도 모른다 히힝! 따가닥 따가닥 히힝! 아버지는 비겁한 인간이다 따가닥 따가닥 남자로서도 그렇고 따가닥 따가닥 남편으로서도 그렇고 따가닥 따가닥 아버지로서도 그렇고 인간으로서도 그렇고 저질이다! 히힝! 히힝! 나는 아들을 목말 태운 채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따가닥 따가닥 전신주 뒤에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뱃속에 아이가 들어 있다는 것도 서방의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넋을 놓고 있었다 여자는 새빨간 치마를 입고 있었다 빨간 치마가 타오르는 불길처럼 펄럭거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렇게 금방 눈에 띄는 새빨간 치마를 입고 있다니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아들을 길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버지! 더 태워주라 아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잠시만 기다려라 목말 태우고 영남루 계단을 씽씽 달려 올라갈 테니까 나는 여자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내 눈을 피했다 아직 봄인데 조그만 땀방울이 하얗고 매끄러운 이마에 맺혀 있었다 아마도 이번 달이 산달일 것이다 나는 산달이 되었는데도 아름다운 여자가 가엾었다 이 여자의 얼굴은 자식을 몇이나 낳아도 엄마의 얼굴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때다 나는 이 여자를 만날 때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가엾다고 생각한다 뭔가 부족하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리라 뭔가가 모자라기에 어딘가 모르게 망가져 있기에 만나서 안고 헤어진 후에는 정말 만났는지조차 모호해지고 늘 안개 속에서 잃어버릴 것처럼 느껴진다 여자는 OK 카페의 댄서였다 원 투 스리 원 투 스리 하얗게 부드럽게 흐르듯이 원 투 스리 원 투 스리 원 투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