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85회…손기정 만세! 조선 만세!(13)

  • 입력 2003년 4월 6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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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으로 찍어서 모양을 냈습니다.” 인혜는 갓난아기의 머리칼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인혜의 얼굴은 온종일 미나리를 뜯은 손바닥처럼 창백하게 부어 있다.

우근은 송편을 입에 넣었다.

“맛있네.”

신태가 목을 길게 빼고 송편을 담아 놓은 접시를 끌어당기려 했다.

“먹고 싶다고 그릇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면 안 된다.” 희향이 말했다.

신태는 오른손을 움찔 당기고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할매는 먹지 말라고 한 기 아이다. 먹어라.” 희향은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신태는 송편을 집어 입에 넣고, 우근의 말투를 흉내냈다.

“맛있네.”

우근과 미옥이 소리내어 웃자, 신태는 소매로 입을 닦고는 의기양양하게 제일 큰 소리로 웃었다.

“송편을 이쁘게 빚어야 좋은 서방을 만난다는 말이 있다.” 희향이 말했다.

“하지만도, 시집을 가서야 이쁘게 빚을 수 있다 아입니까.” 인혜가 말했다.

“아를 가진 사람이 덜 익은 송편을 깨물면 딸을 낳고, 잘 익은 송편을 깨물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도 있다. 와, 니는 와 안 먹노?”

“…아, 아입니다… 좀….”

“나중 일은 생각말고 입에 넣어봐라. 홀몸이 아이다 아이가.”

어색한 침묵이 번지자 거의 동시에 우근이 그 침묵을 거둬들였다.

“형, 5000이나 1만에서 이겨봐야 빛도 못 본다. 역시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다.”

“…내일부터 같이 달릴라나.”

“뭐라꼬, 정말이가? 나, 우리 학교에서 젤로 빠르다. 5학년도 6학년도 내는 못 이긴다.” 우근은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숭늉을 들이켰다.

“일단 시작하면 매일이다.”

“알았다!” 우근은 무릎을 바닥에 대고 일어섰다.

“다 먹었다고 그렇게 촐싹거리면서 금방 일어나는 거 아이다. 아버지가 숟가락 내려놓을 때까지 가만히 있거라.”

“아버지 아이다.” 우근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다.” 신태는 좋아하는 딸기를 두 손에 움켜쥐고 번갈아 우물거렸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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