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86회…손기정 만세! 조선 만세!(14)

  • 입력 2003년 4월 7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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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딸기다. 아 해라, 아” 짓이긴 딸기를 숟가락에 담아 입술에 갖다댔지만, 아기는 입을 벌리려 하지 않는다. 인혜는 신음하듯 숨을 토하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리고 배를 만졌다.

“괜찮나?” 우철이 물었다.

인혜는 욕지기가 올라와 심하게 꺽꺽거렸다. 아기의 머리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흔들거렸다. 우철이 아기를 받아 안자 인혜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건넌방에서 뛰어나갔다.

“엄마, 어디 아프나?” 신태가 팽팽하게 펴진 깃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픈 게 아이다. 뱃속에 알라가 있어서 그란 기다” 우철은 자기 손바닥에 아기의 두개골 모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마른 거 아이가. 4개월인데 목도 서지 않고…”

“아이고, 이 아 낳고 한 달 만에 또 아를 가졌으니, 젖이 우예 나오겠노. 오늘은 내가 젖을 좀 얻어먹일라고 가곡동 예주네까지 갔었는데, 이 아는 젖을 먹었다 카면 토한다, 그것도 왝왝하고 뿜어내듯이 토하니까네, 아이고”

땡 땡 땡, 기둥시계가 예쁜 소리로 8시를 알렸다. 희향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부아가 치민 듯한 시선으로 글자판을 쏘아보았다.

“신태야, 숭늉 마신 다음에는 반찬에 손대는 거 아이다”

아기는 자기를 혼내는 줄 알았는지, 거의 들리지도 않는 맥없고 쉰 소리를 내며 울었다. 가족은 모두 그 울음소리에 귀기울였다. 우철은 아기와 눈을 맞추지도 돌리지도 못하고, 눈을 감고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입 속에 남아 있는 김치 냄새가 신경이 쓰여 잠을 잘 수가 없다. 혀로 잇몸을 핥아보기도 하고, 몇 번이나 침을 삼켜보기도 했지만 끈질기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감각이 내게서 아주 멀게, 내 입, 내 미각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니 기묘한 일이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 그건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마치 바늘이 뜯겨나간 시계가 된 것 같다. 안쪽은 움직이고 있는데 바깥쪽은 죽어 있다. 아니, 그 반대인가? 바깥쪽은 움직이고 있는데 안쪽은 죽어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아무튼 내 안 어딘가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다. 우철은 모기장에서 빠져나와 바지만 입고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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