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두 형제 서로 이기려 하지말고 ‘한가족’ 잊지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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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함께]당진 亞청년대회서 젊은이들과 문답
“수녀 포기하고 가족부양해도 되나?”… “다른 이를 향한 마음 항상 초대받아”
“한반도 통일위해” 10초간 침묵기도… 헬기로 상경후 서강대 깜짝 방문도

김대건 신부 생가 찾아 기도 15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는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를 방문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당진=사진공동취재단
김대건 신부 생가 찾아 기도 15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는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를 방문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당진=사진공동취재단
15일 아시아청년대회가 열리는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 주변에는 교황이 도착하기 전부터 환영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늘이 흐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맑았으며, 더운 날씨 속에서도 시민들은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20대 중반의 각국 젊은이들은 행사장 안팎에서 성가를 부르거나 미리 준비한 “비바 파파 프란치스코(VIVA PAPA FRANCISCO)” 또는 “진짜 친구 교황님 프란치스코”라고 쓰인 푯말을 흔들며 교황을 기다렸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이 대회는 아시아 지역의 젊은이들이 모여 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영적 체험과 함께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다.

환호 속에 성지에 들어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 생가에 먼저 들렀다. 교황은 초가집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약 1분간 기도를 올린 다음 하얀 천으로 된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생가 방문을 마친 교황이 행사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일반 시민과 대회 참가자들은 크게 환호했다. 교황은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아기를 발견한 교황은 걸음을 두 번 멈추고 아기 이마에 입을 맞추거나 양 볼을 맞대며 볼키스를 나눴다.

교황이 5시 10분경 행사장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6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비바, 파파!”를 크게 외쳤다. 마침내 천주교대전교구장인 유흥식 주교가 “우리의 친구이자 연인이신 프란치스코 교황이십니다”라고 소개하자 “꺄∼악!” “와∼”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설적 록스타의 아시아 순회공연장 모습을 연상시켰다. 교황은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 이어 아시아 젊은이들에게도 21세기 최고의 스타로 받아들여졌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젊은이들의 전통 공연에 이어 캄보디아 홍콩 한국 대표 청년들이 각자의 고민을 교황에게 질문했다. 이들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교황은 이따금 종이에 무언가를 받아 적기도 했다.

연단에 오른 교황은 답변을 하다 갑자기 “잠시 침묵 중에 평화와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도하자”며 10초간 눈을 감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침묵의 기도를 제안했다.

교황의 파격은 젊은이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그대로 나타났다. 이들의 질문에 대해 영어로 답변하다 답답한 듯 원고를 덮었다. 그러면서 교황은 “연설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탈리아어로 꿈을 꾼다”며 이탈리아어 답변에 대한 통역을 부탁했다.

캄보디아에서 온 여학생 스마이 씨는 “수녀가 되고 싶어 한국에 유학 왔지만 가난한 부모와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 보였다. 성직자가 되길 포기하고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홍콩에서 온 청년은 “중국 본토에서도 교회가 발전하기 위해 청년들이 가질 사명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한복 입은 성모 마리아상에 분향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모 마리아상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날 제단 안에 설치된 성모상은 한복을 입고 비녀를 꽂은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한복 입은 성모 마리아상에 분향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모 마리아상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날 제단 안에 설치된 성모상은 한복을 입고 비녀를 꽂은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무엇보다 교황은 손자뻘인 젊은이들의 고민에 대해 자상한 할아버지와 같은 따뜻함으로 응대했다. 교황은 “저는 수녀로서의 삶을 계속 살 것인지, 공부를 더 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우리는 종교적인 수도자로서의 삶을 지향하듯, 평신도로서의 삶을 지향하듯 언제나 다른 이들을 향한 마음을 갖도록 초대를 받고 있으며 또한 주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기도하다 보면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했다.

교황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인 여학생의 질문이었다. 교황은 “한반도에 형제와 가족들이 서로 갈라지고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픔을 나도 크게 느끼고 있다”며 “나는 언제나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두 형제들이 언젠가는 하나로 뭉치고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두 형제가 갈라져 있는데 그중에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장에서 만난 대학생 장윤혁 씨(27)는 “교황께서 건강하셔서 지금처럼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셨으면 좋겠다”고 기쁜 마음을 밝혔다. 일주일이나 걸려 교황을 위한 푯말을 준비했다는 임지혜 씨(29·여)는 “교황님께 ‘Coraggio avanti gen(용기를 내어 앞으로)’이라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우리 젊은이들한테도 교황님께도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시간 반에 걸친 청년대회 행사를 마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헬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예정에 없었던 서강대 방문을 했다. 교황은 서강대 사제관을 찾아 40여 분간 100여 명의 예수회 한국관구 신부 및 수사들과 환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의 첫 교황으로 서강대는 예수회가 설립한 대학이다.

당진=전승훈 raphy@donga.com / 최혜령 기자
#아시아청년대회#솔뫼성지#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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