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가담후 살해 협박에 은퇴… 어느 선수의 도피기

  • Array
  • 입력 2011년 7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낯선 이와의 식사… 그날 내 축구인생은 끝장났다”

“조선족들한테 맞아봐야 정신 차리겠나.”

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중국음식점. 승부조작에 연루된 전직 프로축구 선수 A는 조직폭력배를 만났다. 가게 이름과 메뉴는 모두 중국어로 되어 있었다. 더는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하자 상대는 “조선족을 시켜 없애버리겠다”며 중국 폭력조직과의 연관성을 암시했다. 그는 수시로 A를 불러내거나 전화를 하면서 승부조작에 계속 가담하라고 협박했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군요. 운동을 못 하게 하는 수가 있다고 겁을 줬습니다. 부르는 곳으로 오지 않으면 직접 구단으로 찾아오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갔습니다.” A는 몇 차례 부름에 응했는데 그때마다 간판이 중국어로 된 가게로 불려갔다. 그는 “가게 분위기 때문에 왠지 겁을 더 먹게 됐다”고 했다.

조직폭력배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하며 괴롭혔다. “심심풀이로 하듯 수없이 전화를 했다”는 설명. 운동을 핑계 삼아 전화를 늦게 받으면 문자메시지로 “도대체 운동을 몇 시간이나 하느냐. 빨리 전화 받으라”고 성화였다. A는 전화번호를 여러 차례 바꾸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같이 승부조작에 연루된 친구들도 똑같이 협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친구들을 통해 자신의 바뀐 전화를 알고 연락해 왔다.

가슴앓이 속에서 그의 경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감독이 “다시 한 번 잘해보자”고 다독였다. 그는 차마 털어놓지 못하고 “감독님, 한 달만 더 해보고 말씀드릴게요”라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감독에게 “외국에 가서 1년만 뛰다가 은퇴하겠다”고 말한 뒤 팀을 떠났다. 폭력배들은 평소 “도망갈 거면 지구 반대편의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라. 잡히면 죽는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해외에 나가 진로를 모색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훈련 중 다리가 부러져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됐다. 축구 인생은 갑자기 허망하게 끝났다. 답답한 심정을 측근에게 털어놓자 다시 프로축구로 복귀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싫었다. “K리그로 돌아올 바에야 차라리 베트남 리그 등 동남아시아로 갈 길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부상 때문에 성치 않은 몸으로 새 진로를 모색하던 그는 끝내 축구계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집 밖으로 나가기가 부담스럽다. 골목길에서 누가 뒤따라오거나 마주 오기라도 하면 괜히 나를 해칠까봐 경계한다”고 말했다.

A가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은 지난해 여름. 같은 고등학교 출신 친구 B에게서 “밥이나 한번 먹자”고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로 나갔다가 친구로부터 승부조작 제의를 받았다. 돈의 유혹에 흔들렸다. 처음엔 사태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미리 돈을 받고 다른 구단에 있는 친구 C에게도 “같이 하자”고 연락했다. 그런데 친구 C가 “그러면 큰일 난다”며 완강히 반대했다. 그래서 B, C와 상의한 끝에 “못 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락책을 맡았던 B가 돈을 댄 조직폭력배에게 전화를 했다. 돌아온 것은 “장난하냐”는 답변이었다. 상대팀이 지기만을 바라며 경기에 나섰고 실제로 상대팀이 졌다. 다음 날 B에게 돈을 돌려주며 다시는 안 한다고 했지만 조직폭력배가 직접 전화해 협박했다. 결국 한 경기 더 승부조작에 가담하게 됐고 조직폭력배들은 이를 미끼로 점점 심하게 협박했다.

A는 남은 인생을 어찌 살지 걱정이다. 그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다 털어놓고 새 출발을 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러나 “나를 협박한 조폭들이 아직 안 잡혔다는데…”라며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