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집권하면 “‘박근혜 패권’에서 ‘문재인 패권’으로 넘어가는 것”이라며 문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또 조기 개헌에 반대하는 문 전 대표를 겨냥해 ‘대선 전 개헌’을 통한 정치교체 의지를 밝혔다. 개헌을 고리로 세력을 규합해 주춤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등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국민 65%가 개헌을 지지하고 있다”며 “제1당의 후보가 되실 분이 개헌은 안 되겠다고 하면 결국 패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선 전 개헌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 문 전 대표에 대해 “당에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문 전 대표의 의사가 탐욕스럽게 적용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문 전 대표만 좋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개헌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문 전 대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던 반 전 총장이 태도를 바꾼 것은 문 전 대표와 대립 구도를 형성해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아울러 국민의당,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등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세력과의 연대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이원집정부제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제시했다. 대통령이 외치를 맡고, 대선에서 연대하는 세력에는 내치를 담당하는 ‘책임총리’를 약속함으로써 연합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궁극적으로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를 합쳐 한 번에 선거를 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대통령 임기가 4년으로 줄기 때문에 중임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문 전 대표가 내세운 정책들을 비판하며 각을 세웠다. 반 전 총장은 “문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미국보다 평양부터 가겠다고 말했는데 남북관계가 어떤 상태인가.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도 비판이 나오니 말을 바꾸고 오락가락한다”고 지적했다.
청년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는 “(문 전 대표가) 공공부문 늘려서 일자리 만든다고 하는데 이는 악순환만 불러온다”며 “법에 적시된 것 외에 모든 규제를 풀어주는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면 기업이 신이 나서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정당 선택 등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대선까지) 시간이 촉박한 것을 알고 있지만 결정된 게 없어 지금 밝힐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지지율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반 전 총장이 거취와 정책 비전에 대해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지 않으면서 여권에서는 적지 않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이 문화일보 의뢰로 조사한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반 전 총장은 16.0%로 문 전 대표(31.2%)의 절반 수준이었다. 가상 양자 대결 조사에서도 문 전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민주당 주요 대선주자에게 모두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오전 24명의 여권 의원이 참석한 반 전 총장 초청 간담회에서도 “귀국 후 행보가 전형적인 보여주기 방식”, “친이명박, 친박근혜, 충청권이라는 이유로 선을 그으면 언제 세력을 모으느냐” 등 반 전 총장을 향한 쓴소리가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좀 더 명확한 태도와 비전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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