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쓰는 편지라니….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배고픈 내가 언젠가 배부를 나에게 쓰는 편지라면 신나서 쓸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은 배고프지만 미래에는 좀 달라져 있을 테지? 그곳은 따뜻하고 사람들 두루 안녕한지, 큰소리로 물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천상병 시인은 태연히 “배부른 내가/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단다. 과거의 자신에게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물으며 그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 시를 앞에 두고 왠지 부끄러워 얼굴이 홧홧해지는 까닭은 뭘까. 배부른 나는 배고팠던 나보다 가진 게 없을지 모른다. 배부른 나에겐 용기나 투지, 열정과 모험심, 아량과 겸손이 부족하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하니 도망가고 싶을 수밖에. 그러나 기억하자. 시인은 “배부른 내가/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편지를 쓴다고 했다. 오늘밤엔 기어이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써볼까?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해 미안하다고 사죄해 볼까?
시인은 점심을 먹고 난 뒤의 배부름을 말하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 시는 보이는 것보다 크고 깊다. 그 안에 빼곡한 슬픔과 인생의 곡절이 담겨 있다. 그는 인생을 소풍처럼 다녀간 사람, 적은 양식으로도 흡족해하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시들을 편지처럼 독자에게 전하고, 훌쩍 떠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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