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민기]안하무인… 적반하장… 이영호 눈에 ‘국민’은 안보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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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기 사회부
신민기 사회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 새로운 유행어가 생겼다. 같은 말을 두세 번 반복해 말하는 것이다. “제가 바로 ‘몸통’입니다. 몸통입니다!” 20일 이영호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말투를 빗댄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자회견 내내 억울하다는 듯 한 구절 한 구절에 힘을 줘가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진정으로 국민 앞에 죄송해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은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연이은 폭로와 검찰 출석으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이뤄져 생방송으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런데도 이 전 비서관은 국민에게 호통 치듯 언성을 높여 방송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목소리는 컸지만 알맹이는 없었다. 이날 이 전 비서관은 자신이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고 시인했다. “제가 자료 삭제를 지시했습니다. 맞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겠습니다. 지겠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큰소리치는 모습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자기 대신 증거인멸 혐의를 뒤집어쓴 부하 직원들이 옥살이를 하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도 그는 떳떳했다. 오히려 자료를 삭제한 것은 맞지만 증거를 인멸한 것은 아니라는 궤변(詭辯)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불법성이 없었다면 왜 애초에 자신이 ‘몸통’이라고 나서지 못했을까.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넨 2000만 원을 두고 “선의에서 돈을 줬다”고 해명한 것은 많이 들어본 화법이어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기자회견을 자청해놓고 취재진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끝내버린 기자회견 이후의 모습도 씁쓸하기만 했다.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 대로변에서는 한바탕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전 비서관이 기자를 피하려고 차도로 뛰어 들어가 도로가 잠시 마비되고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던 그는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통령님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고 역정을 냈다. ‘몸통’을 자처한 그 충정이 과연 국민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윗선을 향한 것인지 그는 알 것이다. 잘 알 것이다.

신민기 사회부 minki@donga.com
#기자의눈#민간인불법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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