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뉴욕 속 이야기로 떠나는 짧은 여행. 기사에 담지 못한 뉴욕의 순간을 전해드립니다.
이 순간의 음악: Wonderful Christmastime - Paul McCartney
올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진저 브레드 재봉사들로 귀엽게 꾸며진 뉴욕 맨해튼 크리스찬 디올 매장 쇼윈도 모습.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여러분은 어느 나라, 어떤 도시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많은 세계인들에게 뉴욕도 그 중 하나일텐데, 그래서 요즘 뉴욕은 어딜가든 크리스마스 감성이 가득합니다.
건물 전체를 아이코닉한 선물 상자 느낌으로 장식한 뉴욕 맨해튼 까르띠에 매장 건물 모습.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뉴욕의 크리스마스 감성이 가장 잘 살아나는 곳 중 하나는 거리 건물마다 이어지는 창문, 그러니까 쇼윈도입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특히 뉴욕에서는 매년 백화점들의 크리스마스 쇼윈도 경쟁이 치열한데, 아마도 1년 중 창문을 두고 가장 자존심 경쟁이 붙는 때가 아닐까 합니다.
뉴욕의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상징하는 양대 산맥은 맨해튼 5번가의 고급 백화점인 ‘버그도프 굿맨’과 ‘삭스 핍스 애비뉴’ 입니다. 두 백화점 모두 수십 명 규모의 쇼윈도 전담 조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스타일은 많이 다릅니다.
건물 전면부에 설치한 크리스마스 조명 장식을 이용해 쇼를 하는 맨해튼 삭스 핍스 애비뉴 백화점과 구경나온 인파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흔히 뉴욕에서 버그도프 굿맨 쇼윈도는 ‘메트(MET·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약자)’ 스타일, 삭스 핍스 애비뉴는 ‘브로드웨이’ 스타일이라고 부르는데요. 말하자면 버그도프 굿맨은 예술성이나 장인정신에서 톱이고, 삭스 핍스 애비뉴는 대중성이나 화제성에서 최고라는 뜻입니다. 두 곳 모두 시각적 효과 뿐 아니라 쇼윈도나 쇼에 담는 ‘메시지’를 중시한다는 점은 공통점이고요.
버그도프 굿맨의 크리스마스 쇼윈도는 늘 자신만의 어떤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데, 올해도 예년과 비슷한 그 느낌(?)이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소 복잡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굉장히 화려하고 가면 무도회 같은 느낌이 특징인데, 올해도 약 100명의 장인들이 수개월 간 한 땀 한 땀, 종이 조각, 모자이크, 입체 모형 제작 등 다양한 수공예 기술을 녹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특유의 독특한(?) 예술적 감성을 보여주는 뉴욕 맨해튼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쇼윈도 모습.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그에 반해 삭스 핍스 애비뉴는 철저히 대중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건물 전면에 화려한 외부 조명을 설치하고, 10~15분에 한 번씩 캐롤이나 팝송 등 메들리에 맞춰 파사드 점등을 바꾸는 라이트 쇼도 합니다. 삭스 핍스 애비뉴의 길 건너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유명한 록펠러 센터까지 있다보니 크리스마스 기간 이 일대는 맨하튼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뉴욕 맨해튼 삭스 핍스 애비뉴 백화점의 전면부 장식. 올해는 다이아몬드 형태와 빛, 캐롤과 팝송 메들리로 쇼를 꾸몄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그런데 아주 솔직히 말하면 맨해튼에서 크리스마스 쇼윈도로 유명한 버그도프 굿맨, 삭스 핍스 애비뉴, 메이시스 등 여러 백화점을 볼 때 요즘은 ‘한국이 더 잘하는데….’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작년과 올해 뉴욕 쇼윈도는 왠지 모르게 ‘불황의 그늘’이 느껴지는데, 2023년 크리스마스 때보다도 오히려 장식과 화려함이 줄어든 느낌이 듭니다.)
올해보다 훨씬 화려했던 2023년 삭스 핍스 애비뉴의 크리스마스 라이트쇼. 크리스찬 디올과의 협업을 통해 ‘꿈의 회전목마’를 주제로 쇼를 펼쳐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섬세한 디테일로 많은 호평을 받았던 2023년 크리스마스 당시 삭스 핍스 애비뉴 쇼윈도 장식.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섬세한 디테일로 많은 호평을 받았던 2023년 크리스마스 당시 삭스 핍스 애비뉴 쇼윈도 장식.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십 몇년 전만해도 일본 도쿄나 뉴욕 맨해튼의 백화점들이 우위를 가졌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한국의 백화점들도 워낙 발전했기 때문에 해외의 ‘핫플’들이 그닥 놀랍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비단 백화점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이든, 영화관이든 생활 속 많은 문화공간에서 요즘 서울의 수준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 내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실제 한국을 다녀온 많은 외국인들이 서울의 세련미와 디테일을 극찬하는 걸 많이 듣기도 하고요.
상당히 단촐해진 올해 뉴욕 맨해튼 메이시스 백화점의 실내 크리스마스 장식. 메이시스는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백화점 중 하나지만, 예년에 비해 장식의 수와 디테일이 크게 줄어 들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그럼 서울도 언젠가는 뉴욕처럼 세계인들의 마음 속에 크리스마스의 도시로 자리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언어(영어) 문제와 인터넷 인증 시스템 문제 같은 기본적인 장벽들부터 없애야 할 듯 합니다. (외국에서 한국 여행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도와주다 보면 여전히 한국은 미국인들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나라임을 알게 됩니다. 일단 한글에서 한번 막히고, 한국 휴대전화 번호가 없어 본인확인 인증이 안되는 데서 두 번 막힙니다. 한옥 숙소 예약부터 서울시나 각종 국립 박물관 등이 운영하는 공공 프로그램 예약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우 휴대전화 인증없이는 인터넷 예약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는 거의 느껴보지 못한 장벽입니다.)
서울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크기의 ‘메가 시티’인 탓에, 맨해튼처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도보로 이동하며 압축적으로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도 전략이 필요한 지점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부터 부활절, 할로윈 등 각종 기념일이 있을 때마다 온 도시의 시민들이 함께 나서 도시 전체를 하나의 축제로 만드는 문화야 말로 한국이 따라잡기 힘든 뉴욕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보다 너무 멀리 왔네요. 어쨌거나 서울의 12월도 머지 않아 맨해튼만큼 세계 여러나라의 인파로 가득 찬 곳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