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첫 무역 합의한 英, 브렉시트 덕분? [조은아의 유로노믹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13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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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3년 5월 스코틀랜드에 있는 턴베리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이 골프장은 그의 어머니 소유로 알려져 있다. 턴베리=AP 뉴시스

“트럼프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유명한 턴베리 골프장도 소유하고 있다.”

2022년 리즈 트러스 총리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맡았던 콰지 콰르텡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10일자 기고에서 “트럼프의 영국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뜬금없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와 영국의 관계를 부각시킨 것.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8일(현지 시간) 영국과의 첫 무역 합의를 발표하자 나온 반응이다. 영국 정계는 이번 미국과 영국의 무역 합의를 큰 성과로 추켜세우며 흥분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초고율 관세로 전 세계 국가들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던 와중에 영국이 합의를 이뤄낸 ‘1호 국가’가 됐기 때문.

영국 내에서도 합의에 대한 평가가 갈리긴 한다. 하지만 영국이 초강대국의 압박에 따른 불확실성을 신속하게 완화한 성과를 냈다는 게 중론이다. 해외 언론들은 영국이 까다롭던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한 비결에 주목하고 있다.

● “인질 협상에 가깝다” 비판도

합의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산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연간 10만 대에 한해 기존 25%에서 10%로 낮추기로 했다. 10%의 상호관세는 유지되지만 관세율을 낮춘 건 미국 수출이 중요한 자동차 업계엔 희소식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도 조정할 방침이다. 대신 영국은 미국에 에탄올, 소고기, 농산물, 기계류 등의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 결과에 대해 “환상적이고 역사적”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협상은 장기적으로 양측이 각자 이득이 되길 바라며 주고받는 ‘인질 협상’에 가깝다”며 “트럼프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고 그 대가를 지불하고 나면 손가락 몇 개가 잘리고 아마도 큰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위스키, 연어, 자동차 등 모든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는 10%로 유지된 점이 한계로 꼽힌다. 영국 영화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외국 영화에 대한 관세 위협이 여전한 점도 문제다.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예상된다.

● 숨은 전략가들의 ‘물밑 작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2월 27일 백악관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시작이 미미하긴 하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도 있다. 협상에 성공한 비결을 두고 분석이 분분하다. 로이터통신은 “두 나라가 비교적 균형 잡힌 무역을 하고 있고, 영국이 다른 나라들처럼 관세로 (미국에) 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와 관세를 낮추는 첫 번째 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은 스타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 아첨한 점도 주효했다고 봤다. 올 2월 스타머 총리가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번째 국빈 방문을 요청하는 왕실의 초대장을 보낸 점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로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숨은 전략가들의 ‘물밑 작전’에 주목했다. 비밀 자문 회사 해클루이트의 전 대표인 바룬 찬드라 총리 고문이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그는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는 영국 정부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맡고 있지 않은 ‘비공식 라인’이다. 숨어 있던 40세의 그가 스타머 총리의 다우닝가에서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 했음을 잘 보여준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이 매체는 “그는 노동당 정부는 거의 따라올 수 없는 기업 인맥을 자랑한다”고 소개했다.

피터 맨델슨 주미 영국 대사 역시 토니 블레어 내각 때부터 갈고 닦은 유창한 언변과 외교로 기여 했다는 진단도 눈에 띈다. 폴리티코는 “그는 기업인들에게 미국에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물었고, 호화로운 관저를 최대한 활용해 백악관 출입기자단에 세 차례의 파티를 열었다”고 전했다.

● ‘브렉시트’ 덕분?

이번 합의 성공의 요인으로 돌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소환돼 주목을 끌었다. 2020년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EU와의 교역 감소를 우려해 미국과 일찍이 무역 합의를 서둘러 왔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일찍이 협상 진도가 나갔던 덕에 미국으로서도 영국과 무역 성과를 내기가 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로 여러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EU의 틀을 떠난 점도 주효했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이 독자적으로 가볍게 협상했기 때문에 빠른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는 얘기다. 콰르텡 전 재무장관은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영국이 (브렉시트로) 무역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기 때문에 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EU가 우리가 한 만큼 유리한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낮고 오히려 더 나쁜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앞으로가 문제다. 지금까지는 손쉽게 협의를 이뤘지만, 더 높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언론 액시오스는 “영국과의 이번 협정은 ‘손쉬운 목표’였다”며 “다음 협상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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