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특별, 참아라 모든게 괜찮아진다”… 철제산소통 속 72년, 멈추지않은 도전[사람,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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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남기고 떠난 美 ‘아이언렁 맨’
6세때 소아마비로 ‘산소통 생활’
입에 연필 물고 공부 변호사 취득
8년 걸려 회고록 출간 ‘열정의 삶’

폴 알렉산더(오른쪽)의 동생 필립이 폴의 죽음을 추모하며 살아생전 함께했던 모습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필립은 “수백만 명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면서도 나에겐 여느 형제와 다름없었던 평범한 가족”이라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필립 알렉산더 페이스북 캡처
“장애는 당신의 미래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이후 70년 넘게 ‘철제 산소통(아이언렁·iron lung)’ 안에서 살면서도 다양한 활동을 해 사람들의 귀감이 됐던 미국인 폴 알렉산더 씨가 11일 사망했다. 변호사, 작가로 일했고 최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도 33만 명 이상의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많은 이에게 희망을 안겨 줬다. 지난해 3월에는 이 산소통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알렉산더 씨는 1946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그리스계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났다. 1952년 미 전역에 소아마비가 창궐했을 때 이 병에 감염돼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됐다. 당시에는 소아마비 백신이 일반화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원통 모양의 철제 산소통 안에 누워서 지냈다. 백신이 없었을 시절 소아마비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호흡에 활용되는 근육인 횡격막 및 가슴 근육의 마비였다. 당시 환자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바로 ‘아이언렁’이었다. 머리를 제외한 모든 신체를 넣은 뒤 간헐적으로 음압을 부여해 폐가 부풀도록 하는 인공호흡 장치다.

훗날 휴대용 인공호흡기가 개발됐지만 이미 그의 흉부 근육이 많이 손상됐다. 이로 인해 아이언렁 없이 호흡할 수 없었다. 기계 밖으로 내놓은 얼굴 말고는 신체를 움직일 수 없어 식사 같은 기본 활동도 일일이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다만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은 어느 것에도 꺾이지 않았다. 스스로 호흡하는 법을 연습하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주겠다는 어른들의 말에 부단히 노력하여 하루 수분에서 수시간씩은 기계가 아닌 휠체어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자유롭지 않은 손 대신 입으로 연필을 물고 공부한 끝에 텍사스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30년 이상 변호사 활동을 했다. 플라스틱 막대와 펜을 사용해 키보드를 두드리며 회고록도 출간했다. 책 한 권을 쓰는 데 무려 8년이 걸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알렉산더 씨는 지난달 틱톡 영상을 통해 불안과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수년간 조언과 위로를 전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손이 움직이지 않아 누군가를 만질 수 없고, 예외적인 때를 제외하면 누구도 나를 만지지 않아 절박한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말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다”며 “삶이란 정말 특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금만 참으라.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라며 불안을 느끼는 청년세대를 위로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소아마비#아이언렁 맨#폴 알렉산더#변호사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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