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 현장 참혹… 죽을 위기 수차례 넘겼다”, 라파 검문소로 탈출 외국인들 안도의 한숨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호주 가족, 고향 갔다 전쟁에 갇혀
외국인 여권 덕에 겨우 이집트로
한국인 가족 5명도 가자 빠져 나와
“탈출 도운 韓정부 눈물나게 고마워”

1일 이집트 라파 국경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를 빠져나온 호주인 A 씨(가운데)가 과거 두 자녀와 찍은 사진. 시드니모닝헤럴드 웹사이트 캡처
1일 이집트 라파 국경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를 빠져나온 호주인 A 씨(가운데)가 과거 두 자녀와 찍은 사진. 시드니모닝헤럴드 웹사이트 캡처
“지금은 너무 지쳐서 아무 말도 안 나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한 달 가까이 갇혀 있다가 1일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인 라파 국경검문소를 통해 이집트로 빠져나온 호주인 A 씨는 탈출 직후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밝혔다. 지난달 7일 전쟁 발발 후 이 국경이 열린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A 씨는 “25일간 생사를 오가는 위기를 여러 번 넘겼다”고 했다.

가자 출신 호주 국적자인 A 씨는 올 9월 가자 북부에 있는 고향에 갔다. 12년 만의 고향길이었다. 7, 10세 두 자녀도 동행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하며 발이 묶였다.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 전역에 대피령을 내렸지만 휘발유를 구할 수 없어 A 씨 가족은 움직일 수 없었다. 며칠 뒤 불과 100m 거리에 있는 4층 아파트가 공습을 받아 흔적도 없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일가족은 일단 도보로 피란길에 나섰다. 수소문 끝에 겨우 택시를 구해 처가가 있는 남부 국경도시 라파에 도착했다.

라파 역시 연료와 식량, 식수가 바닥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남부 국경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A 씨는 “장인이 공습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홀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가족들이 먹을 식료품을 배급받아 오곤 했다”고 했다. 전기와 통신이 제한돼 외부와의 소통도 어려워졌다. A 씨는 지난달 20일 인터뷰에서 “(외부와 통신이 끊길 거란) 불안이 크다”면서 “동네 사람들과 하루 한 시간씩 발전기를 돌려 스마트폰과 노트북 충전에만 전기를 썼다”고 공개했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일 역시 라파 검문소를 통해 이집트로 빠져나온 한국인 B 씨 또한 대사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가족의 가자지구 탈출을 도와준 한국 정부와 대사관에 눈물 나게 고맙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출신 남편을 둔 그는 남편, 세 자녀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가자지구를 빠져나왔다고 했다. 일가족 5명의 국적은 모두 한국이다. 그는 “전쟁 발발 후 외국 국적자의 탈출은 가능하다는 말이 많아 희망을 가졌지만 탈출 직전까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B 씨처럼 가자지구를 빠져나온 교민들은 이집트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당국이 탈출자 속에 하마스 대원이 섞여 있을 가능성 등을 우려해 이들이 오래 이집트에 머무는 것을 경계하는 탓이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팔레스타인#가자지구#공습#라파 검문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