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전 총리 딸, 日자민당 선대위원장 유력… 첫 여성 총리 가능성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2일 1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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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주역인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전 일본 총리의 딸 오부치 유코 의원(小渕優子·49)이 집권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기용될 것이 유력하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12일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7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딸인 오부치 유코 일한의원연맹 부회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자민당 선대위원장은 간사장, 총무회장, 정무조사회장과 함께 당4역으로 꼽히는 핵심 보직이다. 일본 정가에서는 유코 의원의 선대위원장 기용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13일 단행하는 개각 및 자민당 간부 인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일제히 주목하고 있다.

오부치 전 총리의 1남 2녀 중 차녀인 오부치 의원은 일본 세이조(成城)대 졸업 후 민영방송 TBS에 입사했고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듬해인 1999년 부친의 개인비서로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2000년 오부치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63세에 급서한 뒤 아버지 지역구(군마 5구)를 물려받아 26세에 초선 의원이 됐다. 세습이 강한 일본에서 전직 총리 딸로 주목받으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시절인 2014년 40세에 경제산업상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오른쪽)과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오부치 유코 의원은 오부치 전 총리 딸이다. 동아일보DB
그러나 그해 10월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며 오부치 의원은 한순간에 추락했다. 정치자금으로 자신의 형부가 운영하는 옷집에서 옷을 구매하고 후원자들의 공연 표를 구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의혹 자체보다도 가택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하드디스크를 드릴로 부수어 버린 사실이 들통나면서 ‘드릴 유코’라는 치욕적 별명이 붙으면서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워졌다.

오부치 의원은 그해 장관직을 사임한 뒤 지금까지 지역구 활동에 주력하며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도 고사하고 주요 당직도 맡지 않았다. 올 3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오부치 전 총리 딸로 만난 게 이례적인 외부 활동이었다.

일본 정가에서는 9년 만에 ‘드릴 유코’ 치욕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은 유코 의원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래 일본 첫 여성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지난해 6월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가 오부치 유코 의원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오부치 유코 인스타그램
지난해 6월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가 오부치 유코 의원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오부치 유코 인스타그램

오부치 의원을 둘러싼 자민당 내 역학 관계는 미묘하다. 오부치 의원은 기시다 총리의 최대 라이벌이자 차기 유력 총리 후보로 꼽히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자민당 간사장의 파벌 ‘모테기파’ 유력 주자다. 자민당 파벌은 파벌 수장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이 파벌은 과거 오부치 전 총리가 이끈 ‘오부치파’이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유코 의원 기용은 내년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의 라이벌이 될 수 있는 모테기 간사장을 견제할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모테기파 유력 주자이자 부친의 후광이 있는 오부치 의원을 전략적으로 키워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모테기 간사장의 출마를 어렵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민당 총재는 자동으로 총리가 되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로서는 내년 9월 당 총재 선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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