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프리고진 사살하려해 만류… 프리고진엔 ‘안전 보장’ 달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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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무장 반란 후폭풍]
루카셴코, 무장반란 중재 과정 공개
“푸틴엔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
프리고진엔 ‘벌레처럼 짓눌려’ 설득”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간) 수도 민스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를 향해 무장 반란을 일으킨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협상 중재 과정을 이날 공개했다. 모스크바=AP 뉴시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간) 수도 민스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를 향해 무장 반란을 일으킨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협상 중재 과정을 이날 공개했다. 모스크바=AP 뉴시스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의 ‘36시간 무장 반란’을 중재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반란이 극적으로 종료되기까지 24일(현지 시간) 하루 동안 이어진 줄다리기 협상의 막전막후를 생생히 밝혔다. 그는 이 과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사살해 반란을 진압하려 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앞으로 프리고진의 운명이 순탄치 않음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다.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 푸틴 설득

벨라루스 국영통신 벨타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27일 언론, 정치인, 사법기관 지도자 등을 독립궁으로 초청해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 간 자신을 중재인으로 한 협상의 뒷얘기를 공개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바그너그룹이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사령부를 점령한 뒤인 24일 오전 10시 10분 푸틴 대통령과 첫 통화를 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이 전화를 계속 받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고, 프리고진을 사살하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이어 “‘나쁜 평화가 어떤 전쟁보다 낫다’면서 서두르지 말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루카셴코와 프리고진은 ‘20년 지기’로 서로 신뢰하는 사이다.

같은 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푸틴 대통령. 민스크=AP 뉴시스
같은 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푸틴 대통령. 민스크=AP 뉴시스
푸틴의 요청을 받은 루카셴코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11시 프리고진과 통화가 성사됐다. 처음 30분간 욕설이 일반 어휘보다 10배나 많을 만큼 두 사람이 거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프리고진은 요구 사항을 묻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군 총참모장을 넘기라. 그리고 푸틴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싸운 양대 축 간 갈등이 반란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쇼이구, 게라시모프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도 나만큼 푸틴을 잘 알잖느냐”라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침묵하더니 “그들은 우리(나와 바그너그룹)를 목 졸라 죽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모스크바로 갈 것”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이에 루카셴코 대통령은 “가는 도중에 당신은 벌레처럼 짓눌려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는 “푸틴이 오랫동안 이 같은 일(사살)에 대해 내게 말했다”고 회견에서 첨언했다.

그런 다음 푸틴 대통령에게 다시 전화를 건 루카셴코 대통령은 “우리는 프리고진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면 협상이 없을 것이다. 바그너그룹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싸웠던 사람들이라 무엇이든 할 것이고, 우리도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후 5시. 프리고진은 전화를 걸어와 “당신의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멈추면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루카셴코 대통령은 “내가 당신을 벨라루스로 데려오고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루카셴코 대통령이 이 같은 사실을 전하자 푸틴 대통령은 “내가 약속한 대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行)과 형사기소 철회 등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루카셴코 대통령과 프리고진이 6, 7차례 협상을 하는 사이 모스크바에서 200km 떨어진 곳에는 러시아 정부의 방어선이 구축됐다. 약 1만 명의 병사와 경찰도 배치됐다.

● 프리고진 신변 안전 보장받았지만…

반란 당시인 24일 자신이 점령했던 남부도시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사령부에서 연설하고 있는 프리고진. 로스토프나도누=AP 뉴시스
반란 당시인 24일 자신이 점령했던 남부도시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사령부에서 연설하고 있는 프리고진. 로스토프나도누=AP 뉴시스
루카셴코 대통령의 설명대로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사살하는 방안을 제안한 게 사실이라면 그의 속내가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신변 안전 보장을 받고 벨라루스로 건너온 프리고진이 언제든 암살 위협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의 꼭두각시’로 불릴 정도로 러시아에 의존적인 데다 이미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그룹 자금 수사 등 처벌의 명분을 찾고 있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28일 항공기 추적 전문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를 인용해 프리고진의 전용기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앞서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전술핵무기가 상당 부분 이전됐다고 밝혔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날 “이미 상당한 핵무기가 벨라루스로 반입됐기 때문에 그것을 보호하고 있고 보호할 것”이라면서 “러시아인들과 벨라루스인들이 함께 (핵무기를) 경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방에선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이 새로운 위험의 시작임을 예고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프리고진 때문에 벨라루스가 불안정해지고 우크라이나에 위협이 되며 유럽 전체에도 문제가 된다”고 분석했다. 해외로 망명한 벨라루스 야당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프리고진이 범죄자들을 데려와 폭력을 일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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