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본산 이탈리아서 첫 ‘조력자살’…전신마비 40대 남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7일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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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콘치오니 재단 홈페이지 캡처
루카 콘치오니 재단 홈페이지 캡처
조력자살 및 안락사를 죄악으로 여기는 가톨릭의 본산지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한 남성이 합법적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북부 세니갈리아 출신의 페데리코 카르보니 씨는 16일(현지 시간) 자택에서 독극물 주입 기계를 이용해 44세 숨을 거뒀다. 그의 가족과 친구, 의료진 등이 그의 곁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트럭 운전사였던 그는 12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후 병상 생활을 이어왔다. 그는 유언장에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장애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쳤다”면서 “난 일상의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바다에 표류하는 배와 같다”며 조력자살을 결정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는 “나는 마침내 원하는 곳 어디든 날아갈 수 있게 됐다”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도 전했다.

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이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1930년대 도입된 법에 따라 타인의 극단적 선택을 돕거나 방조할 경우 최대 12년 징역형에 처한다. 2017년 이탈리아 의회는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조력자살 합법화 논의는 교황청 등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진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2019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의식이 있는 이가 감내하기 어려운 신체적 또는 심리적 고통을 야기하는 불치병에 시달려 요청할 경우 조력자살을 돕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길이 열리게 됐다.

카르보니 씨를 도운 존엄사 변호 단체 ‘루카 코치오니 재단’은 “2년 전 고인은 (조력자살이 합법인) 스위스에 가려고 했지만 최종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면서 이탈리아 최초 사례로 남게 됐다”고 전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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