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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푸틴이 키운 킬러용병… 가는 곳마다 인권 유린-잔혹행위 악명[글로벌 포커스]

입력 2022-04-30 03:00업데이트 2022-05-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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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에 투입한 ‘바그너그룹’
2014년 크림반도 합병때 첫 등장
해외 ‘푸틴의 그림자 네트워크’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2011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외곽 자신의 식당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당시 총리에게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NPR
《그들의 존재를 크렘린궁은 부인한다. 하지만 그들은 해외에서 암약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옹위하는 활동을 펼친다. 용병 전투, 허위조작정보 유포, 이권 개입, 자원 탈취, 민간인 살해…. ‘푸틴의 그림자 부대’ 바그너그룹이다.》

푸틴의 그림자 부대 ‘바그너그룹’


러시아군이 점령했다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마을 부차의 모습은 세계를 분노케 했다. 살해된 민간인들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여성과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손이 뒤로 결박되거나 고문 흔적이 남은 시신도 적지 않았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보원(BND)이 부차 지역 러시아군 교신을 도청한 결과 매일 어떤 잔혹행위를 할지 의논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BND는 ‘바그너그룹(Wagner Group)’으로 알려진 러시아 용병들이 부차에서 민간인 대상 잔혹행위를 주도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명목상 민간군사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으로 분류되는 바그너그룹은 주로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파견돼 러시아군 배후에서, 또는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러시아군 소속이 아니어서 국제법이 금지한 민간인 학살이나 인권 유린을 자행해도 크렘린궁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 바그너그룹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러시아 헌법은 민간군사업체를 금지한다.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바그너그룹을 알려면 ‘바그너그룹이라는 존재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한다. 존재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바그너그룹이 존재하는 이유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그림자부대’로 통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 푸틴-프리고진-웃킨 삼각 고리
바그너그룹은 2013년까지 러시아정보총국(GRU) 특수여단 소속이던 드미트리 웃킨이 2014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그너는 웃킨이 GRU에서 활동할 때 사용한 암호명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좋아했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으로 ‘탈(脫)나치화’를 들어놓고는 사실상 히틀러를 추종하는 뜻을 지닌 용병 단체를 전장에 투입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방 정보당국은 GRU가 바그너그룹을 통제한다고 보지만 크렘린궁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2016년 크렘린궁 만찬에서 웃킨이 푸틴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공개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크렘린궁 대변인은 웃킨이 다른 군인 300여 명과 함께 표창을 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웃킨이 표창을 받은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바그너그룹이 푸틴과 가까운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돈으로 운영된다고 파악한다. 바그너그룹의 실질적 관리자이자 바그너그룹과 푸틴 사이의 중개인인 셈이다. 프리고진은 2016년 미 대통령선거, 2018년 미 하원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여론 조작을 벌인 여론조사업체 인터넷조사국(IRA)과 콩코드경영컨설팅 소유주다. 두 업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프리고진은 선거 개입 혐의로 미 재무부 제재 대상에 올라 있다.
○ ‘푸틴의 셰프’ 프리고진
프리고진은 소시지 도매업자 출신이다. 19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스토랑을 하던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푸틴과 인연을 맺었다. 푸틴이 시장에 이어 러시아 대통령이 되면서 푸틴이 즐겨 찾던 그의 레스토랑도 같이 흥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 고위 인사도 푸틴을 따라 그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프리고진은 푸틴을 뒷배 삼아 케이터링(출장 요리)으로 발을 넓혔다. 푸틴의 크렘린궁 연회를 독차지하면서 ‘푸틴의 셰프’라는 별명을 얻은 뒤 광산업을 비롯해 문어발처럼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군 관련 경험이 없는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 군사작전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나 중동 독재 정권의 체제 유지를 돕는 대가로 광물자원 채굴을 비롯해 각종 사업권을 따낼 때 자신 소유 기업을 계약업체로 넣어 수익을 얻는다. 여기서 나오는 돈이 크렘린궁과 바그너그룹 자금으로 조달된다고 알려졌다. 바그너그룹은 수단의 전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에 정치·군사 지원을 하고 그 대가로 금광 채굴권을 얻었다. 이 계약을 프리고진 소유의 광산기업 M-인베스트가 획득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바그너그룹과 관련됐다는 의혹을 인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업체 콩코드경영컨설팅 내부 자료에는 총괄이사로 ‘드미트리 웃킨’이 올라 있다.

푸틴-웃킨-프리고진의 삼각관계가 바그너그룹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푸틴은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그너그룹에 대해 “러시아에서 법을 어기면 처벌받겠지만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사업할 권리가 있다”며 바그너그룹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했다.
○ 2014년 우크라이나서 활동 시작, 30개국 확산
바그너그룹은 러시아가 해외에서 불법적인 군사작전을 벌일 때마다 활용하는 PMC로 받아들여진다. 이라크전을 비롯한 전쟁터에서 활동한 미국 PMC와 개념은 비슷하다. 미군은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에서 인명 피해가 커 반전 여론이 강해지자 이후 PMC와 계약을 맺고 인명 피해가 큰 작전이나 임무를 맡기곤 했다.

하지만 바그너그룹은 명목상 PMC일 뿐 사실상 러시아 GRU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다. 또 PMC의 주요 역할인 용병 및 경호 일만 하지는 않는다. 천연자원 개발권 획득, 러시아를 위한 허위·조작정보 제작 및 유포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푸틴의 ‘그림자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바그너그룹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을 도울 때다. 이후 시리아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말리 모잠비크 등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분쟁 지역에 나타났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지난 8년간 4개 대륙 30개국에서 바그너그룹의 활동이 포착됐다.

바그너그룹은 특히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친러시아 권위주의 정권을 도와 극단주의 세력 혹은 반군을 탄압하고 있다. 그 대가로 자원 채굴 같은 이권을 챙기면서 반(反)민주주의, 반미(反美)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러시아의 국제무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말리가 바그너그룹의 주요 활동지였다. 프랑스는 2013년부터 ‘파리 테러’의 주범으로 꼽히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억제하기 위해 옛 식민지 말리에 병력을 주둔시켜 작전을 수행했다. 하지만 말리 군정(軍政)이 바그너그룹 용병을 고용하자 올 2월 이에 반발해 주둔군 철수를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말리 군부는 테러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지키려는 포식동물 같은 의도로 바그너그룹을 최고의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 가는 곳마다 인권 유린-잔혹행위
22일 AFP통신은 바그너그룹 용병들이 말리 민간인 시신 10여 구를 집단 매장하는 모습이 담긴 위성 영상을 공개했다. 프랑스군이 제공한 이 영상은 당시 퍼지던 ‘프랑스군이 민간인을 학살, 집단 매장했다’는 트윗을 반박하는 증거였다. 이 트윗은 바그너그룹에서 만든 여러 가짜 트위터 계정에서 뿌린 것이었다.

유엔 인권감시기구 휴먼라이트워치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말리에는 바그너그룹 용병 약 1000명이 도착했다. 이들은 말리 군인 약 30명을 산 채로 불에 태우고 IS 대원으로 의심된다며 민간인 300여 명을 즉결 처형했다.

올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출몰했다. 서방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 동안 바그너그룹 용병 1000여 명이 그동안 활동하던 리비아 시리아 등지에서 우크라이나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암살 임무를 띠고 키이우에 잠입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숀 맥페이트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연구원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바그너그룹 같은 용병을 활용한 군사작전이 증가한 것은 “잔인한 전쟁을 최소한의 정치적 비용으로 치르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장에서 용병의 잔혹행위는 잠재적 고객에게 일종의 광고 역할을 한다. 이런 경향이 커질수록 부차에서 목격한 학살, 고문 등을 현대 전쟁에서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바그너그룹 추적자들 줄줄이 의문사
아프리카 말리에서 비밀리에 훈련 중인 러시아 바그너그룹 용병들 사진. 말리에서 철군을 시작한 프랑스군이 최근 공개했다. 말리 군정과 손잡은 바그너그룹 용병들은 민간인 300여 명을 학살하고 시신을 집단 매장하는 등 각종 잔혹행위를 벌인 의혹을 받고 있다. AP 뉴시스
소차 매클라우드 유엔 ‘용병 사용 실무그룹’ 위원장은 “바그너그룹의 모든 활동에는 투명성이라고는 없다”고 말한다. 이런 구조적 불투명성이 러시아가 세계 곳곳 분쟁지역에서 자국 개입을 부인하며 빠져나가는 구멍으로 활용된다는 얘기다.

미 CNN에 따르면 2018년 시리아에서 미군 공습으로 바그너그룹 용병 20∼30명이 숨지자 그 유가족들은 “왜 이들이 시리아에 가게 됐느냐”며 크렘린궁에 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도 정보가 없다”며 해당 사건 보도가 사실인지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사망자 역시 5명이라고 축소 발표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에 속해 근무한 러시아인은 약 1만 명이다. 대부분은 전직 군인이다.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면 한 달에 4000달러(약 50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파견 지역 자원 개발에 따른 부수입도 챙긴다. 이코노미스트는 말리에서 근무하는 바그너그룹은 한 달에 1000만 달러(약 126억 원)가량을 착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바그너그룹 배후에 크렘린궁이 있다는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들 간의 연관성을 추적해온 러시아 기자들은 줄줄이 의문사를 당했다. 2018년 러시아 독립 언론 기자 세 명이 바그너그룹의 해외 활동과 푸틴의 연관성을 취재하러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갔지만 사흘째에 강도 총격으로 숨졌다. 이들이 탄 차량을 노린 매복 공격이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유일한 생존자인 아프리카인 운전사의 입을 막았다.

자국민이 해외에서 무장강도 공격으로 사망했지만 러시아 외교부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푸틴과 외교부는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도 피해자들이 러시아 정부의 공식 취재 허가를 받지 않고 여행자 자격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다는 점만 강조했다. 이 사건은 바그너그룹 배후에 크렘린궁이 있다는 의심을 더욱 키웠다. 같은 해 시리아에서 사망한 바그너그룹 용병들에 대해 탐사보도를 했던 기자 막심 보로딘은 자신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추락사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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