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검찰, 가슴에 폭탄 박힌 14세 소년 사진 공개…5만명 전범 조사

  • 뉴시스
  • 입력 2022년 4월 6일 13시 35분


코멘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민간 학살 만행을 전세계가 규탄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조작이라고 일축하고 러시아 편을 드는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립적 조사를 강조했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의 전범행위 처벌은 가능해질까?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5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벌어진 전쟁범죄 행위 증거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우크라이나 검찰의 활동을 전했다.

루마니아 국경에서 50km 떨어진 키이우 외곽의 한적한 코시우 마을 제2학교 빈 강당의 무대에 한 여성과 성인인 아들이 걸터 앉아서 러시아군 탱크가 도착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집지붕이 무너졌고 이웃노인을 집 앞마당에 묻었고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에서 온 검사 올가 가주로바(34)가 그들의 증언을 노트북 컴퓨터로 기록하면서 분명치 않은 대목을 확인했다.

“탱크가 들어온 게 어느 쪽이지요?”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기 전까지 가주로바는 하르키우의 형사검사였다. 하르키우에서 800km 떨어진 코시우는 인구 8400명의 작은 마을로 전쟁의 참화를 거의 겪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코시우 학교나 코시우 주민들 집으로 피신했다.

우크라이나 법무부가 5개 사법기관의 수사관 5만명을 동원해 전쟁범죄를 조사하고 있다. 이들이 전국적으로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꼼꼼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군을 전쟁범죄로 기소하기 위한 준비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국에서 주로 여성들과 노인들인 피해자들을 교회, 학교, 강당 같은 곳에서 만나고 있다. 그들은 피해자들에게 언젠가는 가족을 잃고 부상당하고 재산을 잃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피해자들이 힘들더라도 자세하게 얘기해줘야 러시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이다.

가주로바의 동료인 올가 페트로바(47)은 지난주 우크라이나 평야를 그린 배경이 놓인 무대에서 앞에 앉은 9명의 피해자들에게 증언과 디지털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강당 한 구석에서는 한 아기가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페트로바는 국제법에 따라 군대는 군사시설과 무장 전투원만을 공격할 수 있으며 민간인은 공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침략국 러시아연맹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우리는 그걸 입증하려 한다”고 했다.

가주로바와 페트로바는 운동화와 진바지, 터틀넥 셔츠 등 평상복 차림이었다. 하르키우를 급히 탈출하면서 마구잡이로 챙긴 옷가지들이다.

두 사람은 코시우에 머물면서 제1학교에서 난민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할리나 흐리말륙 교장(48)이 수업이 중단된 이 학교에서 지난달 1일부터 88명의 피해자들을 재우고 먹이고 있다. 그는 “상황이 좋진 않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당초 정부에선 증언을 위한 검찰 전화번호가 담긴 전단을 배포하고 러시아군 전쟁 범죄를 입증하는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도록 촉구했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탈진하고 넋이 빠지고, 겁에 질린 상태여서 그런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난달 말 검사들이 피해자들로부터 직접 증거를 수집하기로 했다.

흐리말륙 교장은 “러시아군 침공 전까지 사법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았다. 국립학교장인 나로선 검찰들이 온다고 해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조용히 지켜봤다. 검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구체적 질문을 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했던 질문을 반복해 같은 답변이 나오는 지를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도시와 주, 지방 지도를 펴고 피해자가 사건 발생 장소를 정확히 지목하도록 했다.

흐리말륙 교장은 검사들이 생각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일한다며 “감동받았다”고 했다.

가주로바 검사는 지난해 하르키우로 옮기기 전까지 러시아 반군 분쟁 지역인 도네츠크에서 8년 동안 근무했었다. 안전한 곳을 찾아서 하르키우로 왔지만 1년 만에 러시아군이 침공해 떠나야 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어린 딸이 걱정돼 떠났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기억이 평생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주 제1학교에선 키이우 북쪽 마을 이프린과 부차에서 온 어린이들이 학교 뒷편 인공잔디 축구장에서 축구를 했다. 건물 안에선 비라 코우툰(71)이 지난 2월 25일 러시아군이 도착해 그들을 촬영하는 주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집집마다 난사했다고 증언하면서 눈물과 함께 가쁜 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죽는 걸 봤다. 거리에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고 했다.

러시아 탱크가 집 가까이를 지나 군인들 말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그 뒤 우크라이나군이 도착해 러시아군과 교전했다. 집중사격이 벌어져 웅크리고 있는데 러시아 연료 트럭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고 다른 차량이 앞마당으로 들이닥쳤다. 폭발로 얼굴과 눈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코우툰은 폭발로 창문이 망가져 앞 문으로 빠져 나온 뒤 벽 뒤로 숨어서 도망쳤다고 했다.

코우툰은 지난달 29일 검사들에게 세시간 넘게 증언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놀랐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했고 민간인을 상대로 한 범죄를 입증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코우툰이 증언한 며칠 뒤 우크라이나군이 부차 등 우크라이나 북부와 중부 도시들 10여곳을 해방했고 곧이어 조사관과 언론인들이 우크라이나인 민간인 수십명의 시신 모습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이리나 베네딕토바는 학살이 조작됐다는 러시아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강조했다.

베네딕토바 총장은 가슴 속 심장 옆에 음료수 캔 크기의 폭발물이 있는 것을 촬영한 14세 소년의 검시 장면 사진을 보여주었다. 소년의 팔은 팔굽 아래부분이 뭉개져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들은 소년이 키이우 인근 지역 러시아군 침공 초기에 살해됐다고 했다. 검찰이 지난달 사진 일부를 언론에 공개했었다.

베네딕토바 총장은 “이 가슴 속에 포탄이 있다. 말할 필요조차 없이 소년의 가슴 속에 모든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매일 병원, 학교, 교육현장을 폭격해 파괴했다. 피난민이 얼마나 많은가. 이게 무슨 짓인가”라면서 다른 도시들에서 촬영한 사진들도 펼쳐 보였다. 손이 뒤로 묶인 민간인이 집단매장된 장소 사진이었다. 그는 헤르손 지역에서 발견했다면서 불발 집속탄 사진도 보여줬다. 그는 “러시아인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들은 좀비다. 그들이 이 사진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지 궁금하다”며 분개했다.

전쟁범죄 재판 전문가인 인디애너 대학교 국제관계 교수 데이비드 보스코는 법정에 서는 러시아 당국자들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처벌과정이 두가지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C)와 우크라이나 법원이 기소할 수 있으며 ICC가 대통령, 장군 등 주요 인사를 재판하고 개별국 법원이 하위직 전범을 처벌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보스코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신원을 확보하느냐는 문제다.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피의자들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건은 중지된다. 기소된 사람들이 러시아에 계속 머물면 국제 정의 실현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ICC는 피의자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비밀체포영장을 발부해 피의자가 ICC 회원국을 여행할 때 체포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회원국들이 ICC에 협조를 거부한 사례가 많고 이에 따라 재판이 수십년 동안 열리지 않은 사례가 허다하다.

보스코 교수는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전쟁범죄 피해자들로 판정된 사람들에게 가해자 처벌에 앞서 금전적 보상을 하는 건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피해자들은 전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덕분에 다른 분쟁지역 피해자들보다 보상을 받을 기회가 더 많다. 조사에 대한 지원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증거가 폭주한다”고 했다.

베네딕토바 총장은 우크라이나 검찰이 4204건의 전쟁범죄를 입건했다고 했다. 그중 161건이 어린이 사망 사건이다.

그는 전국 조사관들이 용감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관들이 최전선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 피해자들로부터 조기에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또 페트로바나 가주로바처럼 조사관들 다수가 집을 떠난 사람들이다.

베네딕토바 총장은 “우리는 난민이 아니다. 우리는 군대 계급이 없지만 군인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군인이다.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기에 보상이 필요없다. 그저 우리 일을 할 뿐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가 승리할 것을 믿어야 한다. 검사가 겁먹으면 안된다”고 했다.

분쟁지역에서 사는데 익숙해진 피해자들과 대화하면서 가주로바와 페트로바는 침착하게 사실확인에 집중했다. 가주로바는 여러가지 형태의 폭력행위가 전쟁범죄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제2학교에서 가주로바는 집이 부서지지 않더라도 전쟁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창문이 부서지고 재산이 망가지는 것도 전쟁 범죄 피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코시우에서 검사들은 2014년 시작된 러시아 지원 동부 반군 분쟁지역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왜 최근 몇 주새 벌어진 일만 조사하느냐는 항의를 매일 받고 있다.

도네츠크에서 온 65세의 한 여성이 검사들에게 자신도 증언하게 해달라고 했다. “문서도, 사진도 있다. 내 집이 8년전에 파괴됐는데 지난 8년 동안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페트로바가 “지난 2월24일 이전에 발생한 일에 대해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 8년 동안 도네츠크 지역을 장악한 측이 누군지가 분명치 않다고도 했다.

그러자 여인이 “2014년엔 분명히 우크라이나 땅이었다”고 설명했지만 페트로바는 “그땐 우리를 돕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전세계가 우릴 돕는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